ETC2009. 5. 20. 19:02
無’字가 된 숭례문;도자예술 영역 넓히다
>> 도예가 변승훈의 문자전-오래된 미래
  • ◇도자로 형상화한 글자 ‘무(無)’. 불탄 숭례문이기도 하다.
    벽에 거대하게 새겨진 한자 ‘없을 무(無)’ 자가 불 타버린 숭례문이 됐다. 그러고 보니 글자의 모양과 소실된 숭례문의 모습이 하나의 의미가 되어 만나고 있다.

    도예가 변승훈(54·사진)씨가 한자(漢子) 문자 추상 작업을 선보인다. 도예뿐 아니라 서예, 조각, 설치 등이 혼합된 형태다. 서울 인사동 아트싸이드에서 23일까지 열리는 ‘변승훈의 문자전-오래된 미래’에서는 매끈매끈한 도자 조각들이 ‘무(無)’, ‘산(山)’ 등의 글자로 형상화된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1층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무(無)’ 자로 이뤄진 ‘숭례문’은 이번 전시의 주제이자 전시로 들어서는 문이다. “글씨는 의미를 담는 그릇이지만, 의미 덩어리인 문자를 해체시켜 무의미로 만드는 것이 이번 내 작업의 주제입니다. 바로 ‘무’인 것이죠. 작업을 구상할 때 한 친구가 ‘없을 무’ 자가 불타버린 집을 닮았다는 얘기를 해줬어요.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2개월 뒤쯤 진짜로 숭례문이 불탄 거예요.”

    변씨는 그렇게 해서 ‘무’와 ‘숭례문’을 합쳐냈다. 처음엔 도자로만 구성했지만 너무 매끈하고 완벽하게 보여, 도자와 함께 나무를 태운 숯조각도 가미했다. 이로써 숭례문에 대한 정신적 조의이자 물질적 오마주가 완성됐다.

    ◇추사의 봉은사 현판 글씨인 ‘판전(板殿)’을 형상화한 작품.
    추사가 쓴 글씨 ‘판전(板殿)’도 그의 주요 소재다. 판전이란 절에서 대장경을 모아놓은 전각을 이르는 말로, 추사의 ‘판전’은 서울 삼성동 봉은사 판전 현판에 있는 글씨다. 변씨는 “‘판전’은 추사가 작고 3일 전에 쓴 글씨로, 젊은 시절 그의 글씨가 괴팍하고 개성이 강했다면 ‘판전’은 해탈의 경지가 보이는 글씨”라고 극찬했다. 그는 “내가 감히 추사의 글씨를 흉내 낼 수는 없겠지만,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도예 문자 추상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백색 도자로 구성된 ‘판전’은 다양한 버전이 선보인다. 거꾸로 뒤집혀 있기도 하고, 바닥에 해체돼 있기도 한다. 또 그림 이미지를 컴퓨터 화면에서 확대했을 때 네모난 픽셀로 나타나듯 글씨를 톱니 모양으로 만든 디지털적 재해석도 보인다. 추사의 ‘판전’은 봉은사에서 내려와 글자를 넘어 추상적 이미지로 재탄생했다.

    변씨는 원래 대학에서 섬유미술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도자작업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섬세한 작업보다는 좀더 원시적인 작업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한동안 전통 방식처럼 그릇 만드는 작업을 주로 했다. 하지만 그릇 작업은 단조롭기도 했다. 전통 작업에 머무르지 않고 현대예술에 맞는 새로운 조형작업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전통 도자를 단순히 과거의 것을 그대로 재연하는 데 머물지 않고 도자의 가능성을 확장시키고 싶었습니다. 도자 예술을 현대예술 영역으로 들여놓고자 했습니다.”

    김지희 기자 kimpossible@segye.com

 


Posted by 이안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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