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2009. 9. 14. 16:05

후기인상파의 대표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명화그림 소개


                                                           이미지출처 - 이안아트(www.iaanart.com)
노란 집
고흐, 후기인상파, 1888, 반 고흐 미술관 소장

화가들의 공동체를 꿈꾸며 프랑스 남부의 아를로 내려간 빈센트 반
고흐가 세들어 살았던 라마르탱 광장의 노란 집을 그린 작품이다. '해
바라기' 등 걸작들을 쏟아내며 색체 예술을 활짝 꽃 피운 장소인 동시
에 고갱과의 불화로 자신의 귀를 자르며 정신 발작의 멍에를 짊어지게
된 곳이기도 하다. 그 자체로 명장한 보색대비를 보여주는 코발트색
하늘과 태양아래 빛나는 노란집이 반 고흐가 왜 파리를 떠나 이곳으로
왔는지를 짐작케 한다.




                                                           이미지출처 - 이안아트(www.iaanart.com)
아를의 고흐의 방
고흐, 후기인상파, 1889, 오르세 미술관 소장


이 작품은 '고흐의 방' 시리즈 마지막 세번째 완성작 이다. 1889년
9월 생레미에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고흐의 방 첫번째 완성작은
1888년 10월 중순, 고흐가 고갱이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던 시기에
아를에서 그린 것이다. 이 들의 만남은 비극적으로 끝나고 얼마 후
고흐는 요양원 생활을 하게 된다. 모든 물건이 두개씩 있는 고흐의
방에서 고갱의 빈자리와,고흐의 외로움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미지출처 - 이안아트(www.iaanart.com)
열네송이 해바라기
고흐, 후기인상파, 1888,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1888년 여름 남프랑스 아를에서 몇 점의 해바라기 그림을 그렸는데,
해바라기 그림 가운데 가장 우수한 그림으로 평가되는 이 작품은 해
바라기의 형상이나 색채, 그리고 해를 향한 성질은 반 고흐의 내면적
원형이라 할 수 있고, 또한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는 자
신의 강렬한 생명력을 해바라기를 통해 본 것이다.





                                       이미지출처 - 이안아트(www.iaanart.com)
열네송이 해바라기
고흐, 후기인상파, 1888,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해바라기의 형상이나 색채, 그리고 해를 향한 성질은 반 고흐의
내면적 원형이라 할 수 있고, 또한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강렬한 생명력을 해바라기를 통해 본 것이다. 1886년
부터 그리기 시작한 해바라기는 처음에는 두 송이로 시작했다가 파
리에 머물던 시기인 1887년에는 네 송이로 수가 늘어난다. 흥미로운
것은 파리 시기에 그려진 해바라기들이 꽃병에 꽂혀 있는 것이 아니
라, 모두 잘려진 채 바닥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바닥에 흩어져 있는
해바라기들의 모습은 절규하는 반 고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미지출처 - 이안아트(www.iaanart.com)
별이 빛나는 밤에
고흐, 후기인상파, 1889, 뉴욕 근대미술관  소장

이 작품은 그 삶의 마지막 1년, 생레미 정신병원에서 그린 작품입
니다. 강렬한 색채의검정. 노란색의 별의 소용돌이는 구심적인 운동
에너지를 표현하는 듯 보이는데 이는 작품이 그가 살아있을 적에는
그의 진가를 누구도 인정하여주지 않아 비참한 생에 시달리는 듯한
내면중심의 몽환적인 화법으로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이미지출처 - 이안아트(www.iaanart.com)
밤의 카페테라스
고흐, 후기인상파, 1888, 오텔로 크뢸러 뮐러 미술관 소장

고흐는 인상주의에서 보고 배운 것 이상을 표현하기위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이시기의 고흐의 색채가 다소 밝아
진 듯하다.고흐는 사흘 밤, 잠도 자지않고 카페의 밤을 담았다.
"나는 간혼 낮 보다는 밤이 더 생동감이 있어 ,색채가 넘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카페가 본격적으로 묘사되며 회화의 주제로 자리
잡은것은 인상주의시기에 들어와서다. 반 고흐의 밤의 풍경에 대한
열정은 타는 듯한 정신의 낮을 향했던 반 고흐의 눈이, 마음속의 보
다 어두운 부분, 정신의 그늘진 부분을 향하게 된 것이다.




                                                           이미지출처 - 이안아트(www.iaanart.com)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
고흐, 후기인상파, 1888, 오델로크륄러 미술관 소장

고흐가 촛불을 자기 모자 위에 붙여 세운 후 론강의 별밤 이라는
걸작을 완성한다. 파리 생활을 마치고 '아를르'에 도착한 후, 프랑스
아를르 지방의 별이 가장 아름답다고 전해지는 9월에 론강의 별밤이
탄생 한 것이다. 작품의 두 연인은 반짝이는 별들이 가득한 강가에 서
있고 강물에 비친 불빛의 그림자들은 작품을 더 황홀하게 느껴지게
한다. 고흐에게 있어 찬란한별은 동경의 대상, 꿈의 나라였을 것이다.


Vincent Van Gogh 1853 - 1890

네델란드 프로트 준데르트 출생
렘브란트 이후 가장 위대한 네덜란드 화가로 널리 인정받고 있으며, 현대 미술사의 표현주의 흐름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불과 1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제작된 그의 작품들은 강렬한 색채, 거친 붓놀림 뚜렷한 윤곽을 지닌 형태를 통하여 그를 자살까지 몰고간 정신병의 고통을 인상 깊게 전달 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감자 먹는 사람들>(1885), <아를의 도개교>(1888),<해바라기>(1888), <별이 빛난는 밤>(1889) 등이 있다. - 네이버

                                                           출처 - 이안아트(www.iaan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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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전시 모습2009. 2. 20. 18:15

학교용 명화그림액자 - 교육용 명화그림액자를 전시하다.

이안아트가 전시를 기획한 서울시 강남구의 언북초등학교를 방문하였습니다.

▲ 언북초등학교에 새로 건축된 문화체육센터의 외관(www.iaanart.com 제공)

언북초등학교는 08년 학생들과 인근 주민들을 위한 문화체육센터를 열고
깔끔한 외관과 실내인테리어로 그림액자를 전시하였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명화그림액자를 구경하기 위해 모였으며, 문화체육센터를
방문한 모든 분들이 사진을 찍고 작품을 감상하는 모습이었습니다.


▲ 명화그림액자를 감상하고 있는 학생들(www.iaanart.com)

학생들은 등하교길 뿐만 아니라 쉬는 시간에도 명화그림액자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작가가 누구인지 어떤 그림인지 알게 되었고 많은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 모네와 고흐의 명화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1층 계단(www.iaanart.com)

각 층마다 테마를 정하여 전시를 기획하였습니다. 미술관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작품마다 조명을 설치하였으며, 이안아트를 통해 싸게(?)그림을 주문하여 최대의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 마네의 <피리부는 소년>, 렘브란트의 <자화상>등 인물화 전시(www.iaanart.com)



▲ 르느와르의 <봄화병>, 고흐의 <열두송이 해바라기> 명화그림액자(www.iaanart.com)



▲ 고흐의 <고흐의방>을 감상하고 있는 학생(www.iaanart.com)

교육용 명화그림액자는 이안아트 만의 특화된 서비스로 08~09년 교육기관납품
전문브랜드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현재도 많은 교육기관에서 저에게 주문을
의뢰하고 있으며, 아트컨설팅을 통해 추천과 제안을 제공해드리고 있습니다.

이안아트 디자이너 한기주

◎ 인기있는 교육용 명화그림들(www.iaanart.com)

▲ 르느와르의 <피아노치는소녀들>


▲ 고흐의 <열네송이 해바라기>


▲ 르느와르의 <책읽는 소녀>


▲ 프라고나르의 <책읽는 소녀>



▲ 밀레의 <만종>
Posted by 이안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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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언북학부모

    언북문화관에서 본 그림들은 솔직히 어느 잡지에서 뜯은 것같이 인쇄상태도 안 좋아 보이고 그림 크기도 실제보다 많이 작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게 구매한 거라니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 아쉬움이 많습니다.

    2009.02.27 12:52 [ ADDR : EDIT/ DEL : REPLY ]
  2. 양귀비꽃밭

    그래도 말이 좀 심하셔요~^^문화관에 자주 방문하지만 종이도 아닌데 잡지는 좀..아이들에게도 좋은 체험이 될 것 같구 우리 학교에서 신경 많이 쓰신것 같네요. 좋은 그림 담아갈께요~

    2009.02.27 15:05 [ ADDR : EDIT/ DEL : REPLY ]
  3. 언북초학생

    음..문화관에 그림이 없는것보단 낫다고 생각하는데요? 훨씬 고급스러워보이잖아요.

    2009.03.09 21:44 [ ADDR : EDIT/ DEL : REPLY ]
  4. 안데르센

    문화관이라는 이미지에 어울리는 듯하네요^^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림액자와 건물이 이쁘네요~학생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것 같아요.

    2009.03.12 15:23 [ ADDR : EDIT/ DEL : REPLY ]

ETC2009. 2. 20. 14:51

빈센트 반 고흐 / Vincent van gogh (고흐명화그림판매 - www.iaanart.com)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 - 1890년 7월 30일

고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서양화가이며,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엇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업적을 남겼습니다. 비록 그의 생은 짧고 가난한 삶을
살았지만 그의 미술작품들은 그의 당시 심정과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흐의 명화그림은 각 작품마다의 사연과 깊은 이야기가 있지만 오늘은
그의 삶 속에 클라이막스였던 고갱과의 생활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고흐의 <밤의 카페테라스>(www.iaanart.com)



▲ 1888년 해바라기 작품 중 대표작<열네송이 해바라기>(www.iaanart.com)

이 작품이 최고라는 평가를 받은 것은 그의 감정과 태양을 동경하는 마음 등이
잘 드러나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의 외로움이기도 하며, 열정이기도
했던 작품입니다.



▲ 생 래미 병원의 정원을 그린 작품(www.iaanart.com)



▲ 당시의 고흐가 그린 <열두송이 해바라기>(www.iaanart.com)

 - 기본적으로 꼭 알고 있어야 할 명화 中 '고흐' -

[해바라기]는 원래 고흐가 고갱을 위해 그린 작품이다. 그때 고흐 나이 35세였다.
같은 뜻을 품은 예술가들이 모여서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를 결성하는 것을 꿈꾸던
때였다.
 그러나 고흐가 아무리 설득해도 예술가들은 아무도 그와 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중에 유일하게 아를르에 와 준 사람이 고갱이었다.
 고흐는 기뻐서 가구를 샀고 고갱의 방을 꾸미기 위한 그림을 그리는 작업에 몰두하
였다. 우리가 아는 [해바라기]는 바로 그때 그린 그림이다.
 서구 세계에서 해바라기는 예술과 사랑의 상징이라는 의미 이외에도 기독교도의
상징이라는 의미가 있다. 고흐는 타인의 작품을 통해 많이 배우고 또한 독서광이기도
했기에 당연히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1888년 10월 마침내 고갱이 아를르에 찾아왔다. 두 사람의 공동생활은 처음에는 순
조로웠다. 연상의 나이로 자신감이 넘쳤던 고갱은 고흐의 좋은 리더가 되었고 고흐의
동생 테오가 보내 주는 생활비를 관리하고 고흐의 식사까지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역시나라고 해야 할지 안정된 생활은 길게 계속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서로의
화풍을 배우고 예술에 대해 뜨겁게 이야기 나누던 두 사람이었지만 결국 방법론의
차이가 대립을 초래했고 1개월쯤 후에는 언쟁이 끊이지 않았으며 공동생활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사건이 발생한 것은 그 해 크리스마스 전날 밤이었다. 고흐는 유명한 '귀 절단 사건'
을 일으켰다. 고갱의 증언에 의하면 고흐는 고갱에게 칼을 들이댔지만 고갱에게는
위해를 가하지 않고 사라졌다고 한다.
 그 후에는 목격자가 없어서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고흐는 자신의 귓불을 잘라
내고 그것을 씻어서 친한 창녀에게 보냈다고 한다. 고흐의 이런 이해하지 못할 행동은
그 지방에서 대단한 뉴스거리가 되었다.
이렇게 하여 고흐는 아를르의 시민병원에 옮겨졌고 고갱와의 공동생활은 끝이 났다.


▲ 귀를 자른 고흐의 자화상(www.iaanart.com)


그 사건 후의 고흐는...

그가 죽은 것은 그 후 2년이 지나고 나서였다. 한때는 원기를 회복하고 다시 [해바라기]
를 그리던 고흐였지만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고 가끔 발생하는 발작 때문에 고민했다.
그는 자신의 불안정한 정신상태에 불안을 느끼고 생 레미에 있는 정신병원에 자발적으로
입원하여 그곳에서 보리밭과 삼목나무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그런 고흐에게 재차 발작이 엄습하였고 동생 테오에 의해 오베르 쉬르 오와즈에
사는 의사에게 맡겨졌다.
그리고 1890년 7월 27일 고흐는 자신을 권총으로 쐈다. 하지만 급소를 피했던 것을 보면
정말로 자살하고 싶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결국 그는 목숨을 건졌고 그날 밤은
주위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려 하지 않고 줄담배만 피우며 보냈다고 한다.
고흐가 죽은 것은 그 이틀 후의 일이다. 테오가 지켜보는 가운데 고흐는 37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 고흐의 <씨뿌리는사람>(www.iaanart.com)
이 작품은 고흐가 그림을 배우던 시절 밀레의 그림을 따라 그린 것입니다.



▲ 고흐의 방(www.iaan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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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안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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