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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02.20 고흐명화그림 - 고흐의 사연이야기
주제별 그림들2009. 11. 13.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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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출처 : 이안아트>

빈센트 반 고흐는 1853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났어요. 오늘날 고흐의 그림은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비싸지만, 고흐는 일생동안 그림을 단 한 점밖에 못 팔았어요.

1888년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프랑스 남부에 있는 아를이라는 지방으로 이사를 갔어요. 고흐는 햇살이 넘치는 남쪽 풍경에 흠뻑 빠져 들었지요. 특히 그곳의 들판은 고흐가 좋아하는 해바라기로 가득했답니다.

고흐는 색채들은 각각 상징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노란색이 행복과 우정을 뜻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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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는 자신이 머무르던 곳의 해바라기를 너무나 좋아해서 그리고 또 그렸어요. 두껍게 물감을 바른 캔버스에 매우 빠르게 붓질을 했지요.

<고흐 그림 더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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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안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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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2009. 2. 20. 14:51

빈센트 반 고흐 / Vincent van gogh (고흐명화그림판매 - www.iaanart.com)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 - 1890년 7월 30일

고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서양화가이며,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엇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업적을 남겼습니다. 비록 그의 생은 짧고 가난한 삶을
살았지만 그의 미술작품들은 그의 당시 심정과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흐의 명화그림은 각 작품마다의 사연과 깊은 이야기가 있지만 오늘은
그의 삶 속에 클라이막스였던 고갱과의 생활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고흐의 <밤의 카페테라스>(www.iaanart.com)



▲ 1888년 해바라기 작품 중 대표작<열네송이 해바라기>(www.iaanart.com)

이 작품이 최고라는 평가를 받은 것은 그의 감정과 태양을 동경하는 마음 등이
잘 드러나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의 외로움이기도 하며, 열정이기도
했던 작품입니다.



▲ 생 래미 병원의 정원을 그린 작품(www.iaanart.com)



▲ 당시의 고흐가 그린 <열두송이 해바라기>(www.iaanart.com)

 - 기본적으로 꼭 알고 있어야 할 명화 中 '고흐' -

[해바라기]는 원래 고흐가 고갱을 위해 그린 작품이다. 그때 고흐 나이 35세였다.
같은 뜻을 품은 예술가들이 모여서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를 결성하는 것을 꿈꾸던
때였다.
 그러나 고흐가 아무리 설득해도 예술가들은 아무도 그와 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중에 유일하게 아를르에 와 준 사람이 고갱이었다.
 고흐는 기뻐서 가구를 샀고 고갱의 방을 꾸미기 위한 그림을 그리는 작업에 몰두하
였다. 우리가 아는 [해바라기]는 바로 그때 그린 그림이다.
 서구 세계에서 해바라기는 예술과 사랑의 상징이라는 의미 이외에도 기독교도의
상징이라는 의미가 있다. 고흐는 타인의 작품을 통해 많이 배우고 또한 독서광이기도
했기에 당연히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1888년 10월 마침내 고갱이 아를르에 찾아왔다. 두 사람의 공동생활은 처음에는 순
조로웠다. 연상의 나이로 자신감이 넘쳤던 고갱은 고흐의 좋은 리더가 되었고 고흐의
동생 테오가 보내 주는 생활비를 관리하고 고흐의 식사까지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역시나라고 해야 할지 안정된 생활은 길게 계속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서로의
화풍을 배우고 예술에 대해 뜨겁게 이야기 나누던 두 사람이었지만 결국 방법론의
차이가 대립을 초래했고 1개월쯤 후에는 언쟁이 끊이지 않았으며 공동생활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사건이 발생한 것은 그 해 크리스마스 전날 밤이었다. 고흐는 유명한 '귀 절단 사건'
을 일으켰다. 고갱의 증언에 의하면 고흐는 고갱에게 칼을 들이댔지만 고갱에게는
위해를 가하지 않고 사라졌다고 한다.
 그 후에는 목격자가 없어서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고흐는 자신의 귓불을 잘라
내고 그것을 씻어서 친한 창녀에게 보냈다고 한다. 고흐의 이런 이해하지 못할 행동은
그 지방에서 대단한 뉴스거리가 되었다.
이렇게 하여 고흐는 아를르의 시민병원에 옮겨졌고 고갱와의 공동생활은 끝이 났다.


▲ 귀를 자른 고흐의 자화상(www.iaanart.com)


그 사건 후의 고흐는...

그가 죽은 것은 그 후 2년이 지나고 나서였다. 한때는 원기를 회복하고 다시 [해바라기]
를 그리던 고흐였지만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고 가끔 발생하는 발작 때문에 고민했다.
그는 자신의 불안정한 정신상태에 불안을 느끼고 생 레미에 있는 정신병원에 자발적으로
입원하여 그곳에서 보리밭과 삼목나무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그런 고흐에게 재차 발작이 엄습하였고 동생 테오에 의해 오베르 쉬르 오와즈에
사는 의사에게 맡겨졌다.
그리고 1890년 7월 27일 고흐는 자신을 권총으로 쐈다. 하지만 급소를 피했던 것을 보면
정말로 자살하고 싶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결국 그는 목숨을 건졌고 그날 밤은
주위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려 하지 않고 줄담배만 피우며 보냈다고 한다.
고흐가 죽은 것은 그 이틀 후의 일이다. 테오가 지켜보는 가운데 고흐는 37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 고흐의 <씨뿌리는사람>(www.iaanart.com)
이 작품은 고흐가 그림을 배우던 시절 밀레의 그림을 따라 그린 것입니다.



▲ 고흐의 방(www.iaan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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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안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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