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그림들2010. 2. 25.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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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프레데릭 바지유(Jean Frédéric Bazille,1841년 12월 6일–1870년 11월 28일)인물 묘사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이다.

랑그도크루시용의 에로 데파르트망에 있는 몽펠리에에서 중산층의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난 바지유는 외젠 들라크루아의 작품들을 본 뒤 그림에 흥미를 갖게 된다. 그의 가족들은 그가 의학을 공부할 것을 전제로 그림을 공부하는 것을 허락했다.

바지유는 1859년 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1862년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파리로 이사한다. 여기서 그는 인상주의 화가가 되는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를 만났고, 샤를 글레르의 수업을 듣게 된다. 1864년 의학 시험에 불합격한 뒤 바지유는 모든 시간을 그림을 그리면서 보낸다. 그의 친한 친구들 중에는 클로드 모네, 알프레드 시슬레, 그리고 에두아르 마네 등이 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바지유는 그의 작업실 내부의 공간이나 그림에 필요한 재료 등을 제공해 주면서 이 예술가들을 지원해준다.

바지유는 〈분홍 드레스〉를 포함하여 여러 유명한 그림들을 그렸을때 불과 23세였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재결합한 가족〉(1867년–1868년)이다.

프레데릭 바지유는 1870년 29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도중 루아레의 본라롤랑드에서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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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데릭 바지유는 1841년 몽펠리에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그는 파리로 이주한 그의 삶을 회화에 헌신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파리에 있던 샤를 글레르의 아틀리에에서 그는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그리고 알프레드 시슬레를 만났다. 특히 그는 클로드 모네와 깊은 관계를 유지했다. 모네는 바지유가 자신만의 양식을 찾을 수 있도록 격려했고, 어려운 시기에는 번갈아 돈을 빌려주기도하며 도움을 주고받는 친구관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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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모임>은 외광 묘사에 대한 열정과 풍경 속의 인물이라는 테마에 대한 화가의 관심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바지유는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여, 인상주의 운동에 대해 알 수 없었지만, 이미 <가족모임>과 같이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투명한 색채는 훗날 인상주의 운동의 성과를 예견하고 있었다.

동시대 모네의 작품, 예를 들어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된 <정원의 여인들>등에 비하면 빛의 효과에 대한 묘사는 미흡하다. 그러나 화면 속에 나타는 몇 가지 요소들, 즉 지면에 쏟아지는 태양광으로 인한 얼룩과 맑고 투명한 하늘, 그리고 한 가족을 관통하는 특징적인 분위기 등은 틀림없이 인상주의를 예견하는 기법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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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에 모네 역시 풍경 속의 인물이라는 테마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 테마는 모네와 바지유에게서 서로 다른 결과로 나타났다. 모네의 작품에서 인물은 단순히 빛의 효과를 연구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 그러나 바지유가 그린 단체 초상화에서는, 그 안에 묘사된 인물들의 표정과 특징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자연 풍경 속에 있는 인물을 묘사하는 것은 바지유가 선호하는 테마였고, 실제로 그는 이러한 테마의 작품을 여러 점 제작했다. 예를 들면,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된 <빨간 드레스>에서도 이 같은 테마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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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바지유는 균형 잡힌 화면구성에 능숙했다. 그의 작품에서 인물들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배경에 조화롭게 녹아든다.

이와 같은 세부묘사는 프레데릭 바지유의 간단하지만 흥미로운 가르침이 인상주의 운동에 미친 영향을 보여준다. 예술에 대한 바지유의 견해는 누구보다도 모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바지유와 훗날의 인상주의자들과의 밀접한 관계는 그와 절친했던 예술가들의 일상생활을 화면 속에 묘사한 1870년 작<화가의 아틀리에>에 나타난다. 이 작품 역시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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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안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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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그림들2010. 2. 11.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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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루소(Henri Rousseau, 1844년 5월 21일 ~ 1910년 9월 2일)는 프랑스의 화가이다.

가난한 배관공의 자제로, 프랑스 마옌 데파르트망(Department) 라발에서 태어났다. 전문적인 미술 교육 없이, 파리 세관에서 세관원으로 근무하며 49세가 되어서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독학으로 주말마다 그림을 그렸기에 ‘일요화가’의 대명사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미술을 시작한 이 시기에 르 두아니에(Le Douanier:세관원)란 애칭을 얻게 되었다.

1885년부터 살롱 드 샹젤리제에 2점의 작품을 출품한 이후 1886년 이후는 앙데팡당전과 살롱 도톤에 출품하였다.

그의 작품은 초기에는 그가 독학으로 미술을 시작했다는 것과 어색한 인체 비례, 환상과 사실의 색다른 조합 등의 이유로 조소와 비난의 대상이 되었지만, 사후에 《경악(驚愕:숲속의 폭풍)》(1891) 《잠자는 집시》(1897) 《뱀을 부리는 여인》(1907) 《시인의 영감》(1909)과 같은 그의 그림은 참신성원시적인 자연스러움을 근거로 높이 평가되었다. 그의 원시림과 같은 원초적인 세계에 대한 동경환상성, 강렬한 색채현대예술의 거장 피카소, 아폴리네르 등에 영향을 크게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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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 불화의 기병대>

앙리 루소는 19세기 후반의 파리 예술계에서 가장 복합적이고 독창적인 화가였다. 그는 평범한 세관 공무원이었으며 40대가 되어서야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작품에 나타나는, 순수하고 마술적인 매력으로 가득 찬 유아 취향의 이미지들은, 불안한 심리에 대한 암시와 더불어 적지 않은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

과연 이엇은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천재 화가가 자신의 원초적인 감성으로 창조한 나이브 아트(전문적 교육을 받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을 의미)인가, 원시 세계에 대한 면밀한 연구 끝에 얻어진 결과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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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aterfall>

앙리 루소의 작품에 대한 논쟁은 현재에도 진행형이지만, 어쨌든 루소의 작품이 -고갱에서 르통, 피카소에서 들로네에 이르는- 20세기 초의 아방가르드 화가들과 기욤 아폴리네를 위시한 지식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며, 또한 칸딘스키가 소유하고 있던 루소의 작은 그림 한점은 청기사파 화가들에게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앙리 루소가 커다란 크기의 캔버스에 그린 첫 번째 작품이다. 작품은 1894년 앙데팡당전에 <전쟁 : 불화의 기병대>라는 제목으로 출품되어 평단과 대중들 사이에서 격론을 불러 일으켰다. 화면 속 이미지는 전쟁에 대해 우의적으로 시각화한 것이며, 작품의 독창성과 양식적인 순수함이 보는 이의 경탄을 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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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횃불로 무장한 여인이 검은 색의 말을 탄 채 달리고 있다. 그녀는 전쟁과 불화를 상징한다. 그녀는 전쟁과 불화를 상징한다. 그녀는 말발굽에 짓밟히는 시체 따위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가는 곳 마다 죽음과 공포를 퍼뜨리며 계속해서 말에 박차를 가한다. 루소는 작품을 구상하면서 장면의 사실성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여인은 말 위에 타고 있다기보다는 말 옆에 있는 듯이 보이며, 해부학적 비례도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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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위적인 성향의 젊은 예술가들은 루소의 작품으로부터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도발적인 화면과 단순화된 양식, 독창적인 색채의 사용과 이차원적인 공간구성, 그리고 무엇보다 작품에 나타나는 순수하고 자유로운 창조정신은 20세기 초의 아방가르드 예술에 커다란 자극과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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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가 땅 위에 널려 있는 시체들을 쪼아먹고 있다. 이처럼 처참한 장면을 묘사할 때조차 루소의 작품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유아적인 순수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작품은 1890년 보불전쟁을 배경으로 그려진 것이지만 화면 속 기병대의 모습은 특정한 시공간적 배경에 속해 있지 않으며, 마치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네 기사에 대한 모티브를 근대적으로 변용시킨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더 많은 작품을 보시려면>

Posted by 이안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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