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그림들2010. 2. 24. 15:18

스핑크스, 오르페우스, 트라키아, 샤세리오, 표현주의, 레오나르도다빈치, 초현실주의, 그리스신화, 프로메테우스, 파블로피카소, 들라크루아, 낭만주의, 아카데미화풍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 1826년 4월 6일 - 1898년 4월 18일)프랑스상징주의 화가이다.귀스타브 모로는 1826년 파리에서 건축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1848년 이후 테오도르 샤세리오들라크루아의 화풍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 시기에 모로는 그림의 주제를 역사와 신화에서 찾기 시작하며 이는 후에 모로의 화풍을 대변하게 된다. 1857년에서 1859년까지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신화적 주제를 모음과 동시에 그림기술을 향상시켰다. 파리로 돌아와 당시의 미술계에 유행하던 살롱 초대전에 약 20년간에 걸쳐 수시로 작품을 출품한다. 1864년 외디푸스와 스핑크스를 그려 화가로서의 명성을 얻게 된다. 이후에 그려지는 대다수의 작품은 고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인물과 일화들을 주제로 하고 있다. 모로는 의식적으로 신화를 주제로 한 그림에서 인간의 번민과 고통, 이상적인 영웅상 등을 상징적으로 표현함으로서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로 손꼽힐 뿐만 아니라 후에 나타나는 표현주의에 결정적인 동기를 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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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년 파리의 예술학교의 미술과 교수로 초빙되어 마티스, 루오, 마르케 등의 화가들을 길러낸다. 특히 모로는 자상함과 형식에 구애되지 않는 교수 방법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서 존경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1898년 파리에서 암으로 사망했다. 사망후 유언에 따라 모로가 살던 파리의 9구 로슈푸코 거리 (프랑스어: rue de la Rochefoucauld) 14번지의 집은 현재 모로 박물관 (프랑스어: Musée Moreau)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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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페우스는 신화에 등장하는 시와 음악의 명수이며, 그에게 욕정을 품었던 마이나데스의 사랑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죽음을 당한다.

이와같은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는장 콕토와 파블로 피카소에 이르기까지 19세기와 20세기 문학 및 예술 작품 중 가장 인기 있는 주제였다. 귀스타브 모로는 당시 회화 전통에서 벗어나 보다 원전에 충실하게 주제를 해석했다. 다른 화가들이 젊은 오르페우스가 죽음을 맞이하는 극적인 장면의 묘사에 집중했다면, 모로는 그와 달리 한 트라키아 소녀가 마이나데스에 의해 강에 버려진 <오르페우스>의 머리와 체트라(현악기)를 발견하는 장면에 주목했다. 주제의 선택과 표현 양식, 희미하고 매혹적인 대기, 배경과 색조는 회화의 전통적인 도식들로부터 탈피해 있던 귀스타브 모로 예술의 복합적인 특성을 잘 나타내준다. 파리 미술학교의 교수였던 그는 당시의 아카데미 화풍에 비교적 근접해 있었지만, 자신만의 고유한 양식과 표현을 선보여 ‘최후의 낭만주의 화가’이자 ‘최초의 상징주의 화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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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속에는 이미 불안정한 정서, 그리고 보다 내밀한 정신 세계로 들어가고자 하는 열망이 나타나는데, 이는 당시의 낭만주의 화풍으로부터 받은 영향인 동시에, 상징주의뿐만 아니라 보다 근대적인 초현실주의 화풍의 특징적 요소이기도하다. 모로는 디테일한 부분에 대한 연구를 통해 <오르페우스>를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운 작품으로 창조해냈다. 예를 들어 레오나르도 다 빈치로부터 비롯된 전통적인 기법을 거부한 배경, 체트라와 완전히 하나가 된 <오르페우스>의 머리에서 모로 예술의 특징이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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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그림들2010. 2. 18.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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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4년 리옹에서 태어났으며 1898년 파리에서 사망했다. 본명은 피에르 퓌비 드 샤반(Pierre Puvis de Chavannes)이다. 23세 무렵 처음으로 이탈리아를 여행한 뒤 화가가 되고자 결심하고 앙리 셰페르(Henry Scheffer)의 화실에서 1년 정도 공부한 뒤에 들라크루아와 쿠튀르의 화실에서 일했다.

19세기 프랑스의 벽화가 가운데 가장 뛰어난 벽화가 중의 하나로 평가되며, 색채와 기법, 구성면에서 반 고흐나 모리스 드니를 포함한 후기 인상파 화가들에게 찬사와 존경을 받았다. 또한 앙리 마티스도 샤반의 목가적인 아름다움을 높이 평가했다.


<해변의 처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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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퓌비 드 샤반은 19세기 유럽 미술계에서 가장 복합적이고 독창적인 양식을 선보인 화가들 중 한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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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특정한 운동이나 사조에 속한다고 말하기 어려울 만큼 독특했던 그의 양식은 앙리 마티스에서 파블로 피카소에 이르기까지 20세기 화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으며 현대 미술의 탄생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또한 그는 동시대의 화가들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인물이었다. 프랑스에서 미국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서 작품 주문이 쇄도 하였으며, 실제로 작품제작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적도 있었다.

<죽음과 처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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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처녀들>은 단순한 구성 속에 샤반의 근대성이 살아 숨쉬고 있는 작품이다. 마치 유리와 같이 투명하면서도 적막한 대기는 화면에 스며들어 세 여인의 신체를 감싸는 동시에 이들을 현실과 분리시켜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단조로운 색채와 정형화된 인물,화면을 둘로 나누는 구성, 그리고 화면 전체에 흐르는 시적인 정취는 아카데미 화풍,인상주의, 그리고 그 외에 어떠한 것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퓌비 드 샤반 예술의 혁신성을 잘 나타내고있다.


퓌비 드 샤반의 양식은 생테티스트와 나비파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마티스에서부터 피카소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초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을 매료시켰다. 그들은 샤반의 예술이 가지고 있는 독창성과 근대성을 알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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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안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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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그림들2010. 2. 12.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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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팡탱라투르 (Henri Fantin-Latour, 1836년 1월 14일 ~ 1904년 8월 25일) 는 프랑스 화가이다. 아버지로부터 그림의 기초를 배웠다. 처음에는 쿠르베에게 마음이 끌렸으나, 마네의 작품을 알고 게르보아의 집회에도 출석을 했다. 인상파에는 참가하지 않지만, 작품은 명암을 깊게 하여 정확히 신중한 묘사를 하고 있다. 작품에는 〈바티뇰의 화실〉(1870년), 〈들라크루아 예찬〉(1864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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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탱 라투르는 들라크루아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죽음을 애도하여 <들라크루아에 대한 경의>를 제작한 바 있다. 그 후에 그려진 <바티뇰의 아틀리에>팡탱 라투르의 집단 초상화 중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들라크루아에 대한 경의>와 마찬가지로, 팡탱 라투르는 이 작품을 통해 생존해 있지만 인지도가 높지 않았던 또 한명의 거장, 마네에 대한 경의를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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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 위의 점심식사> <올랭피아>를 그린 화가이며 언제나 살롱에서 벌어진 스캔들의 중심에 서 있었던 마네는 이젤 앞에 앉아 모델에게 시선을 돌린 모습으로 등장한다. 모델은 마네의 친구이며, 문학가이자 예술가였던 자키리 아스트뤽이며, 그 주위에는 당시 잘 알려져 있던 인물들, 즉 오토 숄 더러, 오귀스트 르누아르(그의 얼굴은 벽에 걸린 빈 액자 속에 들어가 있다), 에밀 졸라, 에드몽 매트르, 프레데릭 바지유, 그리고 클로드 모네가 마네게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팡탱 라투르는 여러 등장인물들의 시선과 행동을 통해 그들의 특징과 개성을 정확히 표현해냈다. 이들은 당시 파리에서 가장 겆뉘적인 집단이었던 카페 게르보아의 멤버들이었다.
<마리 욜란드 드 핏츠 제임스>

<들라크루아에 대한 경의>와 다르게 이 작품에서 팡탱 라투르는 화면 속에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 넣지 않았고, 그림으로써 카페 게르보아와 자신과의 거리를 표현했다. 비판의 목소리가 있긴 했지만 어쨌든 작품은 1870년 살롱에 전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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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안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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