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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04 르누아르, 가족의 초상 그림 감상
  2. 2009.11.04 르누아르, 고전주의와 혁신가의 조우
ETC2009. 11. 4.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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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생활은 르누아르가 유달리 좋아했던 작품 주제 중의 하나이다. 그는 자신의 가족을 모델로 수많은 작품을 그렸는데 자신의 자녀뿐만 아니라 지인들의 자녀를 묘사하는데 깊은 애정을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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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오랜 외톨이 생활을 해 온 그에게 1885년에 첫째 아들 피에르가 태어나고 1890년에 결혼을 하면서 가정생활은 그의 삶에 절대적 가치를 차지하게 된다. 가정이란 그에게 걱정없이 안정적인 작업을 가능케 한 울타리이며 일상의 평온을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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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과 같은 세상을 그려내고자 했던 그의 작업 철학에 있어서 아마도 가족은 하나의 선결조건이자 절대 조건이었으리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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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가족은 부인 알린느 샤리고와 세 아들, 피에르, 장 그리고 끌로드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부인의 친척 뻘 되는 가브리엘 이란 16살의 소녀가 둘째 아들 장이 태어나던 1894년에 보모로서 르누아르 가족의 일원으로 자리하게 되는데 가브리엘은 향후 20년간 르누아르 작품 전반에 등장하는 주된 모델이 된다.


르누아르의 가정은 매우 화목했으며 부인에 대한 사랑은 한결 같았다. 젊은 시절 그의 부인을 모델로 등장시켜 그린 <개와 함께 있는 르누아르 부인>, <시골 무도회>와 같은 소수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르누아르 부인은 인물화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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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눈에 그의 부인의 회화의 모티브가 아니었던 것이다. 부인을 그린 한 점의 초상화는 죽을 때까지 자신을 위해 간직하고 있었다. 반면 장의 보모로 가족의 일원이 된 가브리엘은 1914년 결혼으로 르누아르 집을 떠날 때까지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형태의 여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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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모델을 쓰기를 싫어했던 그에게 가브리엘은 더 없이 좋은 모델이 되어 주었고 그녀는 나신으로 때로는 분장한 색다른 모습으로 또는 아이들과 함께 노는 평범한 보모의 모습으로 르누아르 후반기 작품을 장식하는 여인의 이미지의 중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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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안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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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2009. 11. 4.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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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미술의 대가들 중에서 르누아르만큼 대중의 눈을 기쁘게 해주는 예술가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의 작품은 그림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미의 전형이자 환희의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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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는 “그림 그리는 것이 즐겁지 않다면 그림 그릴 이유가 없다”라고 평소 말해왔던 삶의 철학에 따라 여성의 아름다움, 모성애, 유년시절의 기억 등을 유쾌하게 그림으로 표현해온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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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저의 조재는 세상이 생각하는 것과는 완전히 ‘반대’였습니다. 제가 혁신가로 비추어진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우스운 일입니다. 화가들 중 가장 보수적인 저인데...”라고 르누아르는 1904년 말했다. 63세에 르누아르는 화가로서의 명성을 얻었고, 역사가 짧았던 추계 살롱전은 폴 세잔느와 나란히 르누아르의 개인전을 열어 그의 작품 30여 점을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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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르누아르는 1870년대와는 전혀 다른 상황에 놓인다. 1874년 ‘제1회 인상파전’에서는 ‘새로운 회화’가 세간의 논란을 불러 일으키며 비판가들의 혹평을 샀지만, 르누아르는 이러한 혹평에 더 이상 시달리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르누아르의 ‘지극히 꾸밈없는 삶’이 그를 무명에서 명성의 길로, 고난에서 인정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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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가 세잔느와 모네처럼 수년간의 무명시절 끝에 말년의 성공을 거두었다 하더라도, ‘지극히 꾸밈없는 삶’이 그를 혁신가에서 고전적 대가로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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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에게 혁신적인 시도와 전통에 대한 애착, 이 둘의 관계는 그의 초기 견습생시절부터 대가로 인정받는 그날까지 긴밀하고 지속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르누아르의 화풍은 그의 성격만큼이나 매우 꾸밈없고 유쾌했기에 이는 전혀 모순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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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안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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