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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14 [세계명화]앵그르의 초상화
주제별 그림들2010. 1. 14.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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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멤버였던 앵그르는 선과 형태, 그리고 이상화된 미의 관념에 기초한 예술의 수호자였으며, 산치오 라파엘의 추종자이자 연구자였다. 또한 그는 외젠 들라크루아가 이끄는 낭만주의에 대항한 고전주의 회화의 대표자였다. 물론 앵그르의 고전주의 양식과 들라크루아의 낭만주의적 경향 사이의 대립관계만을 부각시키는 것은 위험하고 성급한 단순화이겠지만, 어쨌든 앵그르의 회화가 아카데미의 이상을 충실히 구현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19867년 87세의 나이로 죽음 맞이한 앵그르는 그의 만년에 이르기까지 관거의 위대한 회화 전통을 모델로 하여 완벽한 아름다움이 빛나는 작품들을 창조했다. 앵그르는 특히 과거의 거장들 중 라파엘로를 최고로 생각했는데, 이것은 앵그르 자신이 밝히고 있듯이 라파엘로가 진리에 대한 숭배를 통해 미의 전통을 영혼화 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는 피디우스와 라파엘로 이후의 예술에서는 본질을 찾아볼수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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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이상과 실제, 즉 고전주의 양식이라는 이상과 자연의 모방이라는 실제를 조화시키는 앵그르의 능력을 잘 보여주는 걸작이다. 여성 나체의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 어떠한 시공간적 위치와도 무관한 듯이 보이는 배경, 그리고 마치 조각과도 같지만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지 않은 포즈는 작품이 제시하고 있는 이미지를 보편적인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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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달리스크와 노예>

선적이고 평면적인 특성과 윤곽선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앵그르 양식으로 그려졌다. 이 그림은 근동에 대한 앵그르의 관심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여행자들은 종종 근동에 대해 글을 썼으며 대다수는 하렘에 초점을 맞춘것이었다. 원래 오달리스크는 술탄을 만날 일이 거의 없는 하렘 사람들의 시중을 드는 젊은 여자 노예를 의미했지만앵그르는 여기서 젊은 여인을 에로틱하게 묘사하였다. 오달리스크의 성욕은 오른쪽 바닥의 수연통을 포함한 남근을 상징하는 수많은 디테일로 강조되었다. 이 그림은 매우 상세하게 묘사되었고 환경도 근동처럼 그려졌지만, 사실 앵그르는 근동에 가본 적이 없었으며 이 장면도 실물을 보고 묘사한 것이 아니었다. 오달리스크의 모습이 비스듬히 누워있는 아프로디테 전통을 연상시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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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빌 백작부인>

앵그르는 평면적이고 선적인 양식으로 가능한 한 모델을 아름답게 묘사하면서도 그들의 개성을 드러내는 뛰어난 기교를 선보였다. 그는 아주 추한 모델일지라고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거나 성격 묘사를 생략함없이 가장 매력적인 모습을 포착했다. 얌전해 보이는 외모를 하고 있지만 사실 자유주의자, 작가, 존경받는 지식인이었던 오송빌 백작부인을 그리면서, 그녀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은 그에게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화려하게 표현된 직물은 앵그르 그림의 전형적인 특징이며, 여기서도 실크 드레스의 주름과 머리에 맨 리본에서 나는 광채가 인상적이다. 회화 기법의 대가였던 앵그르는 때로는 부르주아라는 비판을 받았으며 그의 그림들은 종종 당시 시사 만화가들에 의해 풍자되었다. 앵그르는 수많은 모순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다. 하지만 우아한 이 초상화는 미술 역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그림 중 하나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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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테시에 부인>

은행가의 아내 마리 클로틸드 이네스 무아테시에의 초상화는 1844년에 착수되었지만 그 이후로 오랫동안 화가의 작업실을 떠나지 못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여자의 옷차림도 여러번 변했다. 무아테시에 부인의 자세는 헤르쿨라네움에 있는 로마시대 벽화에서 따온 것이다. 꽃병, 가구, 여자가 걸친 보석과 화려한 드레스와 아울러, 거대한 거울은 여자의 부유함을 드러낸다. 거울은 또한 그림에 공간감을 부여하고 무아테시에 부인의 옆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이기도 했다. 앵그르는 종종 아름답고 장식적인 물건으로 표사한 거울 여성과 함께 그렸다. 이는 거울에 반사된 이미지를 그리는 앵그르의 솜씨를 증명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휘슬러와 마네 같은 19세기 수많은 화가들도 여러 가지 이유에서 이런 장치를 채택하였다. 앵그르를 계승한 화가인 드가는 앵그르의 데생 솜씨에 감탄했고 열심히 모방했으면, 마티스와 피카소는 앵그르의 유산을 20세기로 옮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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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안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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