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그림들2010. 2. 10.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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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빌럼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년 3월 30일 ~ 1890년 7월 29일)네덜란드 화가로 일반적으로 서양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는 그의 작품 전부(900여 점의 그림들과 1100여 점의 습작들)를 정신질환(조울증으로 추측됨)을 앓고 자살을 감행하기 전의 단지 10년 동안에 모두 만들어냈다. 그는 그의 생존기간 동안에 거의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는 특히 1901년 3월 17일 (그가 죽은 지 11년 후) 파리에서 71점의 반 고흐의 그림을 전시한 이후에 그의 사후 명성은 급속도로 커졌다.

인상파, 야수파, 초기 추상화에 미친 반 고흐의 영향은 막대하고 20세기 예술의 여러 다른 관점에서 보일 수 있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은 반 고흐의 작품과 그의 동시대인들의 작품에 바쳐졌다. 네덜란드의 또다른 도시인 오테를로에 있는 크뢸러-뮐러 박물관도 상당히 많은 빈센트 반 고흐 그림의 수집을 보유하고 있다.

<아를에 있는 반 고흐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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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이 아를에 온다는 소식을 들은 고흐는 들뜬 마음으로 그를 맞이하기 위해 정성으레 방을 정돈했다. 바로 이 시기에 고흐는 <고흐의 방>의 첫 번째 버전을 그렸으며, 후에 짧은 기간 동안 고갱과 함께 노란 집에 살면서, 두 번째 버전을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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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강의 별밤>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된 <아를에 있는 반 고흐의 방>은 그가 어머니와 누이를 위해 그린 세 번째 버전으로, 고흐는 상상 자신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난 것을 복제하여 어머니와 누이에게 보내곤 했었다. 세 번째 버전을 그릴 때 고흐는 프로방스의 생 레미에 있는 생폴 드 모솔 정신병원에 입원 주이었다. 동거기간 중 고흐는 고갱격렬한 논쟁을 벌였는데, 이러한 갈등은 고흐의 귀를 자르는 발작으로까지 이어졌으며, 결국 두 화가를 결별에 이르게 만들었다. 이 사건 이후 고흐는 자신의 병을 깨닫고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이다.



고흐는 고갱이 떠나버린 것에 대해 대수롭지 않은 일인 듯 처신했으며, 그가 떠나게 된 이유가 사교적이지 못한 자신의 성격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를에 있는 고흐의 방>은 고흐가 아를에서 고갱과 함께 보낸 행복한 시절을 추억하며 그린 것이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그림을 보면서 마음의 안식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가구의 크기 또한 온전한 안식을 표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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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밤>

고흐에게 있어 형태와 색채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 즉 타인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도구이자 자신의 마음 상태를 드러내는 도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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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지는 빈 의자는 반 고희의 작품에 흔히 등장하는 테마였다. 이 작품에서는 고갱이 아를을 떠난 후, 고흐가 느꼈던 외로움과 절망에 대한 상징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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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는 1853년 네덜란드의 그로트 춘데르트에서 태어났으며, 화구상의 점원으로 일하다가 신학교에 입학하였고, 목사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후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하며 뒤늦게 화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또한 그는 파리의 생활에 싫증을 느끼고 아를로 향했고, 그곳에서 수 많은 명작들을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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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는 “화면의 전체적인 구성과 각각의 사물들은 평온한 인상을 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라고 했지만, 사실 왜곡된 선과 형태, 그리고 색채의 사용에서는 화가의 불안과 근심이 느껴진다.

 



<더 많은 그림을 보시려면>

Posted by 이안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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