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2010. 2. 18. 16:24



20대의 혈기왕성했던 시절의 화가 강정일은 그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잘난 작가였다. 세상물정도 모르고 화가라는 낭만적인 기분에 취해 오로지 그림만 열심히 그렸던 시기였다. 80년대 다양한 미술경향들이 대두되던 시절 청년 강정일은 지금의 화풍과는 다른 극사실주의초현실주의에 기초한 몽환적 느낌의 작품들을 그렸었다. 보고 느낀 것을 그림으로 재생해내는 일종의 교과서적인 작품과정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화가 강정일은 과거의 기억,추억 등을 소재로 한다. 그리고 소재는 다시 화가 내면의 창작의 공간에서 재해석되어 현재로 재생된다. 과거의 단초가 매개가 되어 2차원을 넘어선 3차원 심상표현의 기술로 진화한 것이다. 그러나 과거나 지금이나 본질에 있어서는 같다고 말한다. 화폭에 옮겨지기 전까지 꾸준한 에스키스의 반족을 통하여 내 느낌과 감각을 표현하는데 있어 가장 효과적인 전달방법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과정과 표현은 달랐지만 결국은 어떻게 더 ‘나’다운 그림을 그릴것인가에 관한 모색인 것이다.


-작가소개-

강정일작가/미술제 서양화부문 수상작가

서라벌예대,한성대학교 미술과 졸업

프랑스 리옹국립미술학교 회화전공 졸업

개인전14회,개인부스전4회

단체전200여회

대한민국미술대전

강남미술대전 심사위원

행주미술대전 심사위원

경기미술대전 심사위원

한성백제미술대전 운영위원장 역임

송파미술가협회회장 역임

송파미술가협회 고문

한국미협 이사

서울방법전, 예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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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안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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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그림들2010. 2. 11.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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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피에르 쇠라(Georges-Pierre Seurat, 1859년 12월 2일 – 1891년 3월 29일)는 프랑스의 화가이자 신인상주의의 창시자이다. 그의 가장 유명한 대작인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신인상주의의 시작으로 현대 예술의 방향을 바꾸었고, 19세기 회화의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쇠라는 파리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샹파뉴 출신의 법공무원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파리 출신이었다. 쇠라는 조각가인 쥐스탱 르캥과 함께 처음 예술을 공부하였다. 쇠라는 1878년과 1879년 에콜 데 보자르에 출석했다. 브레스트 육군사관학교에서 1년간 복무한 뒤 1880년 파리로 돌아왔다. 자신만의 작업실로 옮기기 전까지 파리의 센강 좌안에 그는 두 명의 학생 친구들과 작은 작업실을 공유했다. 그는 그 다음 2년간 흑백화를 그리는 데에 노력을 쏟았다. 그는 1883년 처음으로 그의 주요한 작품을 남겼다. 작품의 이름은 〈아스니에르의 물놀이〉였다.

파리 살롱에서 그의 그림이 거절당한 뒤, 쇠라는 이와 같은 주류파에서 벗어나 대신 파리의 독립적인 예술가들에 가담하게 된다. 1884년 그와 다른 예술가들은 (막시밀리안 루스(Maximilian Luce)를 포함하여) 독립 예술가 협회(Société des Artistes Indépendants)를 결성했다. 여기서 그는 동료 예술가인 폴 시냑을 만나 친구가 되었다. 쇠라는 점묘주의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후에 같은 작풍으로 그림을 그린 시냑과 공유했다. 1884년 여름 쇠라는 그의 걸작인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를 그리기 시작하여 완성하는 데에 2년이 걸렸다.

쇠라의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수막염, 폐렴, 전염성 앙기나나 디프테리아 중 하나가 아닐까 추정되고 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인 〈서커스〉는 그의 죽음으로 영원히 미완성이 되었다.

쇠라는 신인상주의의 일파이며 '신인상주의'라는 이름에 걸맞게 점묘화라는 새로운 그림 표현 기법을 창조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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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

32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조르주 쇠라의 마지막 작품이다. <서커스>는 인상주의에서 시작하여 점차 근대적인 표현 양식을 향해 나아갔던 쇠라 예술의 복합적인 특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1886년 쇠라는 마지막 인상주의 전시회에 참가하였지만(이때 쇠라가 출품한 작품은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였다), 작품의 혁신성을 이해하지 못한 인상주의 예술가들은 그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고 급기야 몇몇 화가들이 모임에서 이탈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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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드의 봄>

쇠라의 연구는 인상주의가 직면한 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 인상주의는 새로운 양식에 대한 실험이 절실한 순간이었다. 쇠라는 인상주의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혁신하려 했다. 쇠라의 점묘화법은 인상주의의 서정성에서 탈피하여 과학적인 방법으로 색채의 지각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려 한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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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쇠라는 슈브뢸의 광학이론을 바탕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 했고, 특히 ‘색채의 동시 대조 법칙’ 이론을 깊이 연구하기 위해 그를 직접 인터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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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묘화법은 화폭에 순색의 점을 계속해서 찍었을 때 관람자의 눈은 스스로 색채를 혼합하게 되는데, 이러한 원리로 인해 쇠라는 빛이 어떠한 조건에 있든 동일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었다.

쇠라는 선의 방향과 색채의 구성, 그리고 인간의 감정 사이에 작용하는 정확한 관계를 밝히려 했던 윔베르 드 쉬페르빌의 이론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쇠라는 이 장면을 그리기 위해 실제 현실에 대한 관찰뿜만 아니라 이론에 대한 연구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 같은 쇠라의 시도는 대단히 독창적인 결과를 낳았고, 인상주의 회화 혁신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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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색 점들로 이루어진 액자는 작품의 일부이며, 화면 속의 이미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이다. 쇠라는 인상주의와 친숙한 주제를 보다 근대적인 양식으로 재해석해냈다. 화면 아래쪽에서 등을 돌린 채, 무대를 가리는 막의 가장자리를 손에 들고 장면을 소개하는 광대의 모습 또한 매우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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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구성 역시 인상주의회화의 그것과는 차별되며, 마치 르네상스 예술의 황금기였던 피에르 프란체스코가 활동하던 시기로 회귀한 것처럼 보인다.

쇠라는 색채의 효과,구성의 균형미등에 상당한 과락적인 주의를 기울였던 반면, 형태 자체에 대해서는 대단히 사실 주의 적인 묘사를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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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안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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