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2009. 6. 8. 18:54
하늘에 날린 사진 1만여장 "모든 욕망을 버리는 행위"
베니스서 퍼포먼스 가진 사진작가 김아타

 

  • 이탈리아 베니스의 팔라초 제노비오 전시장 내에 한지로 프린트된 사진 1만여장이 지난 5일(현지시간) 흩뿌려졌다. 빨간 천을 두르고 10m 높이의 리프트에 오른 검은 제복의 남자가 사진을 하늘에 날렸다. ‘아리랑’ ‘고향의 봄’ ‘오빠생각’ 등 한국적 정서가 묻어나오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와중에 이뤄진 일이었다. 정원 곳곳에서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기도하며 이 행동을 따라하는 이들도 많았다.

    사진작가 김아타(53·사진)씨가 베니스 비엔날레 연계 전시에 앞서 펼친 오프닝 퍼포먼스의 모습이다. 김씨가 날린 사진들은 사뿐히 정원 아래에 떨어졌고, 사람들은 이를 줍느라 여념이 없었다.

    사진은 로마의 다양한 풍경을 담고 있었다. 그가 지난해 찍은 로마 사진이 가로 7인치(17.7㎝), 세로 5인치(12.7㎝) 넓이의 한지에 인쇄한 것이다. 그는 이날 퍼포먼스에 대해 “내가 가진 것을 총집약해서 ‘재미있는 판’을 만들어보고자 한 것”이라며 “모든 욕망을 버리는 행위였다”고 설명했다.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에 열리는 김씨의 특별전 ‘아타킴: 온 에어’에는 한 컷에 8시간의 노출을 준 도시 작품과 얼음으로 만든 파르테논 신전이 녹는 과정을 찍은 ‘아이스’ 시리즈 등 22점이 선보인다. 그가 2002년부터 진행해온 ‘온-에어’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온-에어’는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세상의 모든 현상을 말하며 존재하는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는 개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1만여컷의 이미지를 하나로 합친 회색 톤의 최종 이미지는 색즉시공의 표상이다. 그는 예술가로서 패러다임을 바꾸고 싶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김아타씨가 지난 5일 베니스의 팔라초 제노비오에서 열린 전시 오프닝 퍼포먼스에서 10m 높이에서 사진을 뿌리고 있다.
    “사진을 수천 장 찍다 보면 머릿속이 하얗게 됩니다. 나는 감히 공(空)의 실체를 봤노라고 말하고 싶어요. 기존 패러다임을 넘어갈 수만 있다면 안드로메다까지 가고 싶습니다.”

    이날 퍼포먼스에는 수원대 이주향 교수도 참여해 1시간여 동안 오체투지했다. 퍼포먼스 현장에는 배우 김혜수도 모습을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김혜수는 “2년 전쯤 잡지에서 김아타 작가의 ‘인간 뮤지엄’ 시리즈 사진을 보고 김아타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됐다”면서 “이날 퍼포먼스는 역시 김아타다웠다”고 말했다.

    베니스=글·사진 김지희 기자 kimpossible@segye.com

 

  • 기사입력 2009.06.07 (일) 18:19, 최종수정 2009.06.07 (일)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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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2009. 6. 5. 15:09
피맛골서 조선 백자 출토

현재 대대적인 도시환경정비사업 중인 서울 종로구 청진동 1지구(피맛골)에서 상태가 완벽한 조선시대 백자호(白瓷壺) 3점이 발견됐다. 매장문화재 발굴조사기관인 한울문화재연구원은 5일 이 일대에서 높이 35.5cm, 36.5cm, 28.0cm짜리 백자호 3점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출토된 백자호 3점은 무문(無紋)의 순백자로 조선 초기에 제작된 호(壺)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경기도 광주 일대 관요(官窯)에서 제작된 최상급의 백자로 15세기 말~16세기 초에 제작된 상품(上品) 자기다.

이들 도자기는 19세기 무렵에 지었다고 생각되는 조선시대 건물터를 조사하다가 건물 기단 전면에서 구덩이에 나란히 매납된 상태로 발견됐다.

조사단은 “매납 양상을 볼 때 어떠한 시설을 제대로 갖추고 묻은 것이 아니라 모종의 급박한 사건을 만나 급하게 매납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고 밝혔다.

백자호 3점은 크기가 각각 높이 35.5cm, 입지름 16.0cm, 밑지름 15.2cm(1호), 높이 36.5cm, 입지름 16.9cm, 밑지름 16.0cm(2호), 높이 28.0cm, 입지름 14.0cm, 밑지름 13.3cm(3호)다. 모양이 대략 비슷한 2점의 백자호는 세운 항아리 형태인 입호(立壺)로서 구연부(주둥이)가 짧고 납작하게 말린 것이 특징이다. 동체(胴體)가 어깨 부분에서 불어났다가 하부로 갈수록 줄어들어 하단부에 이르는 모양이다. 이와 같은 최상급 조선시대백자가 고고학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되기는 극히 이례적인 일로 발굴단은 곧 보존처리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영란 기자(yrlee@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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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2009. 6. 5. 14:46
[명화속 여성] ‘본능적 욕망’ 半人半馬를 제압하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
>>보티첼리―아테나와 켄타우로스
관련이슈 : 명화 속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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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기 르네상스의 대표적 화가인 산드로 보티첼리의 ‘아테나와 켄타우로스’에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무지와 본능적 욕망을 상징하는 반인반마(半人半馬) 켄타우로스를 제압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머리채를 움켜잡은 아테나의 표정은 우아하고 근엄하다. 반면 켄타우로스는 크게 당황하고 두려워하며 오른손에 들고 있던 활을 내려놓고 있다. 아마도 깊은 산 속에서 사냥하던 중, 들어가선 안 될 금지구역에 발을 들여놓았기에 여신의 저지를 받는 것일 터.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이성(아테나)이 본능(켄타우로스)을 제어한다는 교훈을 주는 대표적 상징으로 해석되어 오고 있다.

    로마에서 미네르바로 불리기도 하는 아테나는 지혜와 공예의 수호신이다. 뿐만 아니라 이성과 합리적 사고, 지식의 갑옷으로 무장한 아름다운 무사였다. 그녀는 제우스의 머리에서 번쩍이는 금속 갑옷을 입고 한 손에는 날카로운 창을 들고 고함을 치며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그것도 성숙한 여인인 채로. 그리고선 아름다운 머리칼과 얼굴은 투구와 갑옷으로 둘러싸며 전쟁 시 필승의 전략을 짜고, 평화로울 때엔 여러 문명을 이끌어 낸 도시의 어머니 역할을 담당했다.

    페르세우스가 메두사를 처치할 때 도움을 주거나, 트로이전쟁 중엔 그리스 최고의 용사인 아킬레우스를 후원했으며, 오디세우스의 귀로 여행 중엔 오래도록 안내자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는 시대를 풍미한 신화 속 영웅들이 얼마나 그녀로부터 지혜의 꼴을 제공받았는지 짐작케 한다.

    지혜로움과 현명함에 있어선 올림푸스와 그리스 전역에서 감당할 자 없는 그녀였지만, 그녀는 가슴도 얼어붙어 있을 정도로 차가운 냉혈한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예언가 테이레시아스와 얽힌 이야기이다. 젊은 시절의 테이레시아스가 우연히 아테나 여신이 샘에서 목욕하는 것을 보았다. 숲 속에서 목욕하는 아름다운 여신…, 대체 누가 이걸 끝까지 보지 않겠는가? 결국 들켜버리게 되었지만, 그의 행동이 어느 정도는 불가항력이었다는 것을 이해하는 아테나는 고심하였다. 그에게 다가가 눈을 쓸어내리며 ‘이것은 신들의 몫’이라고 말한 순간, 그의 눈이 멀어 버렸다. 아테나가 그의 가슴을 쓰다듬으며 ‘이것은 아테나의 몫’이라 말하자 그는 마음의 눈으로 미래를 포함한 모든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리하여 테이레시아스는 위대한 예언가가 되었다. 신의 입장에서 인간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는 공정한 심판인 동시에 본능을 제어하기 힘든 인간의 입장까지 고려해 정상을 참작해 준 절묘한 판결이 아닐 수 없다.

    본능을 통제하는 이성은 우리가 짐승으로 살지 않게 해주는 고마운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인간의 삶이란 것이 본디 이성이 본능을 오래 억누르다간 탈이 나는 법 아니었던가.

     

     

    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아르헨티나 시안 루이스 보가스는 이런 시를 남겼다.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나는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맨발로 지내리라/ 춤추는 곳에도 많이 가고/ 회전목마도 더 많이 타고/ 그리고 데이지 꽃도 더 많이 꺾으리라.’ 먼 훗날 자신의 생을 되돌아보는 자리에서 진정 원했던 일과 사랑을 합리적 판단이라는 이름 아래 억누르고 냉철한 이성적 결정을 내렸던 사람들이 더 후회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가끔씩은 머리가 아닌 가슴의 소리를 들어봄이 어떨까. 설령 우리가 켄타우로스나 테이레시아스같이 본능에 이끌려 잠시 길을 잘못 들더라도, 지혜와 관용까지 겸비한 여신 아테나가 우리의 길을 바로잡아 줄 것을 믿어보면서 말이다.

    자료제공: 이안아트(http://www.iaan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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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전시 모습2009. 6. 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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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2009. 6. 5. 14:26
美 참전용사들 “한국戰을 역사속 교훈으로”
내년 60주년 앞두고 ‘국립박물관 건립운동’
최형두기자 choihd@munhwa.com
“잊어진 전쟁에서 영원히 기억되는 전쟁으로.”
미국에서도 한동안 잊어졌던 한국전쟁의 역사적 의미를 영원히 되새기려는 노력이 활발하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올해로 59년째, 내년이면 60년이 되지만 한국전을 후세의 미국인들에게 가르치려는 미군 참전용사들의 간절한 희망은 ‘한국전 국립박물관’ 건립운동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박물관 건립부지도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의 기념관 바로 옆이다. 올해로 탄생 200주년을 맞은 링컨 대통령 기념박물관은 남북전쟁으로 찢어질 뻔했던 미연방을 지키고 미국인들을 분열의 늪에서 끌어냈던 링컨의 위업 때문에 미국인들의 영원한 순례지다. 건립부지 선정에서부터 한국전을 영원히 잊어지지 않는 역사로 만들려는 미국 참전용사들의 의지가 엿보인다.

한국전 국립박물관 건립부지는 일리노이주 남부지방의 스프링필드시 중심. 이곳은 일리노이주의 주도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정치입문 이후 주상원의원으로 활동하던 무대이고 지난 2008년 대선출마 선언, 부통령 후보 지명선언을 한 역사적 장소이다. 특히 링컨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고 올해 200주년 행사 때문에 미국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전 박물관 건립부지는 스프링필드시 중심인 매디슨가와 5번가가 교차하는 블록이다. 바로 한 블록 건너 5번가에는 링컨 대통령 박물관·도서관이 있다. 한국전 박물관과 링컨 박물관 사이에는 스프링필드 방문객 센터와 박물관 버스주차장이 있다. 링컨 대통령 박물관을 구경온 사람들은 자연히 한국전 박물관도 함께 볼 수밖에 없는 위치다. 2개 관에 연면적 약 5100㎡ 규모.

한국전 국립박물관 웹사이트(www.kwnm.org)에 들어가면 참전용사들의 의지가 뚜렷이 엿보인다. “한국전에서의 희생은 공산주의 붕괴의 초석이 되었다. 한국전 국립박물관의 목적은 한국전의 역사적 중요성을 미국인에게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웹사이트에는 ‘한국전은 더이상 잊어진 전쟁이 아니다’는 문구도 선명하다. 한국전 국립박물관의 문장에는 ‘잊어진 승리(forgotten victory)’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또한 한국전은 공산주의의 진군을 막은 최초의 전쟁으로 규정하고 있다.

웨스 스태플튼 한국전 국립박물관 추진이사회 회장은 “1997년부터 한국전 참전용사들 사이에서 한국전만을 조명하는 박물관을 별도로 만들자는 운동이 시작되어 전국적인 모금운동이 벌어지게 됐다”며 “부즈 앨드린 같은 참전용사들의 도움에 힘입어 전국적 모금운동은 활기를 얻었고 한국전 당시의 전투기 등이 일리노이주 랜토울의 임시부지에 전시되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2007년 3월 한국전 박물관 추진위원회는 링컨 대통령 박물관 건너편의 부지를 확보했고 여기에다 세계 최고수준의 박물관을 지어 한국전의 역사적 중요성을 후세들이 영원히 새기도록 만들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참전용사들이 나선 데에는 미국 정부가 워싱턴 DC 중심에 한국전 기념조형물을 세웠지만 많은 미국인이 한국전쟁에 대해 잘 모를 뿐 아니라 미국 고등학교 역사책에서 한국전쟁에 대한 내용은 겨우 두 문단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국전 국립박물관 건립이 순조로운 것은 아니다. 박물관 중 일부라도 2009년 5월 중 개관할 예정이었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박물관 추진위측은 1단계를 2010년부터 시작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만약 2010년까지 공사를 제대로 시작하지 못하면 2007년 3월 스프링필드시가 배정한 57만달러의 예산은 다시 시로 귀속된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790만달러가 모금됐지만 상당부분의 돈은 전국적인 모금운동을 위한 우편배달비용 등으로 소진됐다. 2007년의 경우 237만달러가 모금됐지만 후원금 모금운동을 위한 디렉트메일 비용 등은 238만달러였다. 모두 1200만명의 미국인들에게 모금참여 우편물이 배달됐고 이중 약 8만5000명이 한 차례 또는 여러 차례 기부했다. 미국 내 한국 교민들뿐 아니라 한국 내의 관심도 절실한 실정이다. 한국전이 헛되지 않았다는 교훈을 되새기려는 박물관 건립운동이 한국전 발발 60주년인 2010년에는 결실을 맺기를 바라는 참전용사들의 여망도 높아지고 있다.

워싱턴 = 최형두특파원 choihd@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9-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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