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그림들2011. 11. 25. 18:25

안녕하세요~ 

이안아트입니다~^^ 

고갱의 유화그림을 감상하시면서 

유화의 다양한 표현을 느껴보겠습니다.
 

먼저 고갱의 간단한 소개를 하겠습니다. 


후기인상파 화가이자 타히티섬으로 가서

그림을 그렸던 화가로 유명하죠? ^^
 

자, 그럼 고갱의 유화그림들을 감상하겠습니다.  

 

먼저 고갱의 '자화상' 이라는 유화입니다. 

자화상을 독특하게 표현했습니다. 

 손에 들고 있는 뱀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다음작품은 고갱의 유명한 '아를의 나이든 여인들' 이라는 유화입니다. 

창문밖으로 보이는 풍경의 모습을 사진의 한 장면처럼 그렸습니다.. 

뒤에 보이는 풍경의 색감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이 작품도 유명한 '아를의 카페' 라는 유화입니다. 

여인의 눈빛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고갱을 유혹하는 것 같습니다. 

고갱의 '꽃을든여인' 이라는 유화입니다. 

노랑 빨강의 배경이 꽃을든 여인을

한층더 돋보이게 해 주는것 같습니다.
 

'나페아 파 이포이포-언제시집가니' 라는 유화입니다. 

고갱이 타히티섬에 가서 그린 그림이죠.. 

휴양지에서 나른하게 쉬고 있는 두 여인의 모습 같습니다.. 

'이아 오라나 마이라' 라는 유화입니다. 

타히티섬 원주민 말로 '당신을 환영합니다. 마리아' 입니다. 

이 그림은 석모자상을 타히티의 원주민들로

표현했다고 하여 유명해졌습니다.
 


고갱의 '자바여인,안나' 라는 유화입니다. 

1년정도 고갱의 애인이자 모델이 되어주었다고 해서

유명한 자바여인 안나입니다.
  

고갱의 '황색그리스도' 라는 유화입니다. 

고갱의 최고의 작품으로 지목되기도 하는 황색그리스도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과 밑에서 바라보는
 
세 여인의 거룩한 모습과는 다르게
 

노란색의 사용이 독특한 느낌을 줍니다. 


 
'황색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이라는 유화입니다. 

고갱이 타히티에 가기전에 마지막으로 완성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고갱의 표정이 확신에 찬 자신감이 느껴집니다..

어떤확신이었을까요...?
 



고갱의 유화작품들을 보면서 
 

그의 독특한 그림처럼 그의 삶이  

그림속에 반영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림 한 점으로, 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꿈구며.. 

-이안아트- 


P 이안아트님의 파란블로그에서 발행된 글입니다.
Posted by 이안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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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그림들2010. 2. 11.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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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앙리 폴 고갱(Eugène Henri Paul Gauguin, 1848년 6월 7일 ~ 1903년 5월 8일)은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이다. 파리에서 태어났다.

고갱의 생애는 파란만장하다. 아버지는 자유주의자로서 망명하여 남미 리마로 가던 도중에 죽고, 그후 고갱은 7세 때에 고국에 돌아온다. 바다를 동경하여 선원이 되어 남미도 항해하지만, 결국 포기하고 증권 거래소에서 일했다.
 
거기서 돈을 모아 결혼하여 평화로운 생활이 계속되었으나 여가가 있을 때마다 회화에 전력하여 살롱 전에 입선하였다. 피사로를 알게 되어 인상파의 영향을 받은 후, 인상파 작품을 사들이고, 그 화가들과도 교제하여 1880년 제5회 전시회부터 인상전(印象展)에 그의 회화를 출품한다. 이어 회화에 대한 정열은 더욱더 왕성해져서 1883년에는 증권거래소를 그만두고 화가로서 새출발을 한다.

그러나 회화는 생활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돈은 다 떨어져서 아내의 고향인 덴마크로 가는데 덴마크에서 발표한 일도 실패, 고갱은 처자를 남겨두고 단 하나의 어린아이를 데리고 파리에 나타났다. 그러나 생활은 궁핍하여 포스터를 붙이는 노동도 했다. 그리고 1886년부터 브르타뉴의 퐁 타뱅으로 가서 젊은 화가들과 만나, 인상파의 그림에 만족하지 않고, 독자적인 화풍을 창시, 평면적인 채색으로 장식적인 그림을 그리면서, 그의 화풍을 따르는 젊은 화가들과 '퐁 타벵(Pont-Aven) 파'를 창립하였다.

파리로 돌아가서는 고흐를 만났다. 그러나 고갱에게는 미개국에 대한 정열이 있었다. 문명의 허위도 좋아하지 않았다. 원시 속에는 꿈이 있다. 거기에는 시(詩)가 살아 있다. 고갱은 1887년 봄에 남미로 건너가고, 다시 마르티니크 섬으로 가지만 병으로 인한 고뇌로 귀국한다. 그리하여 이듬해 퐁 타뱅으로 다시 가 거기에서 젊은 화가들과 만나 새로운 회화의 이론을 주장한다.

이어 고흐의 초대로 아를르에도 가지만 그 우정은 깨져 버려, 재차 미개척의 땅을 그리워한다. 그 염원을 달성한 것은 1891년으로, 고갱은 태평양의 타히티 섬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 남방의 색채와 미개한 생활은 그리던 땅에 잘 맞고, 그는 그 감동에서 수많은 작품을 그려 낸다. 고갱은 한번 파리에 돌아오지만, 1895년에는 최종적으로 타히티에 돌아간다. 그러나 그림 제작하는 것 외에는 궁핍과 병과 싸우는 생활이고, 1901년에는 도미니카 섬으로 옮겨 가서 고독한 생애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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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

영원히 유럽을 떠나 태평양의 섬으로 돌아가버린 고갱은 1905년 그곳에서 55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그는 이미 심각한 병을 앓고 있는 상태였다. 알코올 남용은 그의 심장질환과 피부발진을 악화시켰으며, 여기에 매독까지 겹쳤다. 이처럼 좋지 않은 건강 상태에도 불구하고 만년에 이르기까지 그의 왕성한 창조력은 멈추지 않았다.

1898년부터 1900년 사이 그는 파페에테에서 여러 점의 걸작을 탄생시켰는데, <백마> 역시 이 시기에 그려진 작품이다. <백마>는 한 약사의 주문으로 그려졌는데, 작품이 완성되고 난 후 주문자는 색채가 반자연주의적이라는 이유로 작품 구입을 거부하였다.(무엇보다 그는 화면 앞쪽의 말이 초록색으로 그려진 것에 대해 불평을 늘어 놓았다.)고갱의 양식은 당시 유럽 대중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때문에 그는 작품 판매로 인한 수입을 전혀 얻을 수가 없었다.

<백마>의 단순화된 구성 속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이고 상징적인 요소들이 숨겨져 있는데, 예를들어 화면 속에 그려진 말의 모습은 파르테논의 프리즈 장식과, 고갱이 자주 인용했던 그림인 뒤러의 판화 <죽음과 악마의 기사>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고갱의 원시적인 회화 양식은 오랜 기간 동안의 연구를 통해 얻어진 것이며, <백마>를 그리던 시기에는 이미 완숙의 경지에 이른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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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위에 탄 인물은 이미 고객에게 가까이 다가와 있던 ‘죽음 저편으로의 여정’을 상징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은 여전히 창조적인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그림과 같이 고갱이 그린 인물들에게서는 그가 브르타뉴와 대 양 저편에서 구하고자 했던 야생적이고 원시적인 숭고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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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주문자가 크게 불평을 늘어놓았던, 화면 앞쪽에 있는 말의 푸른색 털은 고갱이 자연 그대로의 색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고갱은 현실을 재현하는 수단으로써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 생각, 심리, 상태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색채를 사용했고, 이는 새로운 양식, 즉 표현주의와 추상주의를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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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앞쪽에 있는 꽃의 모습에는 원근법적인 구도가 결여되어 있다. 고갱은 평면적인 배경에 순색의 색채를 칠하고 타히티의 전통 의상 파레오를 연상시키는 장식적인 곡선을 사용함으로써, 이와 같은 이차원적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고갱의 작품을 더욱 매혹적으로 만드는 것은 상징주의와 실제의 현실, 그리고 꿈결과 rxk은 화면과 장식적인 요소들간의 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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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히트의 여인들>

1891년 4월 폴 고갱은 타히티를 향해 떠낫다. 그를 먼 곳까지 떠나게 만든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문명사회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전망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었다. 고갱은 그가 브르타뉴와 프랑스 남부에 체류하면서 구하고자 했던 것을 바로 타히티에서 발견했다.

유럽을 지배하던 부르주아의 규범들로부터 벗어나 있는, 본능적이고 원시적인 사회에 대한 꿈은 당대의 많은 화가들이 공유하고 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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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아레아>

타히티의 여인들은 고갱의 새로운 뮤즈가 되었고, 육체적인 아름다움과 성스러움의 신비스런 조화라는 화가의 이상을 완벽하게 실현시켜 주었다. 고갱은 자신만의 독특한 필치로 다채로운 색의 파레오를 걸친 채 자연스러운 포즈로 앉아 있는 여인들을 묘사했다. 그들의 모습에서는 불교 사원의 조각이나 고대 이집트 예술로부터의 영향이 나타난다.

고갱은 원시적인 단순함 속에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들과 상징들, 그리고 작품에 대해 명확한 해석의 열쇠를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혼동을 불러일으킬만한 다양한 해석의 여지들을 숨겨놓았다. 따라서 당시 대다수의 비평가들은 고갱이 제시한 새로운 예술세계를 받아들이지 못했으며, 스트린드베리는 고갱에게 본낸 편지에서 “당신의 낙원에 있는 이브는 내 타입이 아닙니다.”라고 기술했다.


<더 많은 그림을 보시려면>
 

Posted by 이안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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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그림들2010. 2. 10. 15:57


 피사로, 카미유 피사로, 빨래를 너는 여인, 수확, 미르네강변, 후기인상주의, 폴고갱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
생몰
1830년 7월 10일 ~ 1903년 11월 13일
경력
1888년 신인상주의기법 탈피



<빨래를 너는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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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면에서 노동은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의 회화기법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했던 카미유 피사로와 친숙한 주제 였다. 도미에의 <세탁부>와는 달리 이 그림에서 딸과 함께 빨래를 넣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서민들의 삶에 대해 보다 긍정적이고 밝은 시각을 보여준다.


감성적인 예술가 카미유 피사로는 모든 인상주의 전시회에 빠짐없이 참가했던 유일한 화가였다. 그는 소장파 화가들이 주장하던 혁신적인 기법을 이해할 수 있었으며, 동시에 폴 세잔이나 폴 고갱에게서 보이는 복합적인 기법에도 근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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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의 인상주의 전시회에 주르주 쇠라와 폴 시냑을 초대하고자 했던 그의 생각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모임에 적지 않은 혼란을 일으켰다. 1830년에 태어난 피사로는 당대의 점묘화법을 이해할 수 있었던 얼마 안되는 화가들 중 하나였다. 작은 캔버스 위에 그려진 걸작 <빨래를 너는 여인>은 새로운 표현기법에 대한 피사로의 열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수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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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의 선정이나 대기의 표현은 여전히 인상주의의 틀 안에 있었지만 양식과 기법은 근본적으로 변화했다. 피사로는 아직은 젊은 청년 화가였던 조르주 쇠라의 출현을 마치 예고하기라도 하듯이 정확한 광학법칙에 따라 화면 속에 순색의 점들을 늘어놓는다. 여인과 아이의 머리카락에는 노란색과 보라색 점이 사용되었고, 풀밭의 녹색 점 사이에는 빨간색 점들이 숨어 있다. 이처럼 과학적으로 면밀히 연구된 색채의 배열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미르네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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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그림을 보시려면>

Posted by 이안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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