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그림들2010. 1. 1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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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세잔은 1839년 엑상프로방스에서 태어났다. 학창시절 세잔은 에밀 졸라와 친우 관계였으며, 이이후로도 졸라는 세잔에게 문화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세잔은 졸라를 따라 파리로 갔으나, 예술가 사회에 속하지 못한 채, 전위적인 노선의 화가들로부터 의혹과 적의어린 시선을 받아야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그는 점점 더 괴팍하고 까다로운 성격을 갖게 되었고, 대단히 근대적이었던 그의 회화 양식 역시 특정한 예술 운동의 범주에 속한다고 말하기 어렵게 되었다. 세잔은 카미유 피사로와 대단히 친밀한 관계에 있었으며, 인상주의 전시회에 두 차례나 참여했지만, 그가 인상주의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였는지의 여부는 미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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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실 앙프레르의 초상>

작품에서 세잔이 묘사한 이물은 어린시절부터 그의 친구였던 불운의 화가, 아실 앙프레르다. 왜소증을 앓았던 앙프레르는 자신의 키보다 지나치게 높고 커다란 의자 위에 앉은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그의 왜소한 신체를 둘러싸고 있는 의자는 거의 옥좌와 같이 보인다. 세잔은 공식 초상화와 같이 엄숙한 부위기의 화면을 연출하려 했다. 이 처럼 이상화된 표현을 배제한 채 묘사되었고, 이로 인하여 느껴지는 숭고함은 보는 이를 숙연하게 만든다. 한편 화면에 나타나는 자신감 넘치는 붓놀림과 색채의 선택은 훗날의 진보를 예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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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맨 사람의 집>

세잔이 추구했던 새로운 양식이 가장 잘 반영된 작품으로 여겨진다. 이 작품은 그의 초기 작품과 함께 모두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있다. 비교해 볼때, 보다 밝은 색상과 가벼운 붓놀림이 특징적이다. 이와같은 변화는 아마도 피사오의 영향일 것으로 추정된다. 세잔은 오베르의 풍경을 그리기 위해 두 가지 대조되는 요소로 화면을 구성했다. 이산주의자들의 기법처럼 가벼운 필치로 그려진 경쾌한 분위기의 배경, 그리고 양감이 강조된 화면 아래쪽은 확연한 대조를 이룬다. 화면 아래쪽에는 안정적이고 견고한 집의 형태가 자리하고 있으며, 이는 화면 뒤쪽을 보이지 않게 가리는 장막의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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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빅투아르 산>

이 작품에서 보듯 세잔의 붓질은 개개로 분리됨과 동시에 통일성 있는 전체를 형성한다. 세잔은 산과 하늘을 모두 같은 범주의 파란색으로 칠해 놓았다. 따라서 산 전체구성상 3분의 1정도에 지나지 않는 집채들과도, 전경에 거대하게 뭉쳐 있는미분화 상태의 잎새들과도 분리되어 있다. 이처럼 자연을 본질적 단일체로 환원하는 생빅투아르 산의 원칙은 세잔이 이 주제에 부여한 시각적 정확성과 엄밀함을 드러낸다. 또 이것은 얼마 후 체주의를 통해 실행될 형태, 지각, 공간에 대한 실험을 예견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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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욕도>

세 개의 큰 캔버스에 목욕하는 여인들을 그룹별로 묘사한 작품이다. 이 그림이 반드시 목욕하는 사람들이라는 주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목욕하는 사람들을 다루는 화가의 솜씨가 정점에 이르렀음을 보져준다. 생 빅투아르 산에 대한 연구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화가는 지각할 수 있는 세계의 기본 구조를 가시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1명의 목욕하는 사람들을 그룹지으면서, 세잔은 인물들을 시각적으로 맞물리게 묘사했으며, 회화 평면의 왼쪽에서 오른쪽이 하나의 시각적 연속체를 이루게 했다. 형식적 연속성을 통어하는 이러한 감각은, 인물과 즉각적 환경을 묘사하는데 사용된 화가의 균일한 붓질, 혹은 터치를 통해서도 전달된다. 물론 목욕하는 사람들이 선대의 고전주의 화가들로부터 물려받은 주제임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이 주제에 일련의 혁명적인 기술을 적용함으로써 인체에 대한 전적으로 근대적인 개념을 탄생시킨 세잔의 공로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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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안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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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그림들2009. 12. 7. 16:12

정물화란 생활환경 속에 있는 화초·과실·야채·식품·기물·악기·생활도구, 박제로 만들어진 어류나 조수 등 여러 가지 일상생활의 사물을 주제로 한 회화의 총칭이다. 주제가 되는 모든 것이 자기의 의사로서 움직일 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
정물화는 단순한 사물의 포작으로서만이 아니라 나아가서는 움직임이 없는 자연으로 확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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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물화에 대한 사고방식은 생활의 기록이며, 그리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서민의 생활, 왕후의 생활을 전할 수도 있고 또 심상을 정물에 담아 표현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정물화에서는 시대·풍토·민족·전통을 엿볼 수 있고 아울러 인간의 생활과 취미를 느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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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를 거쳐 인상파 시대가 되면, 정물화는 회화구성상의 주제로서 조형이론의 실천을 증명한 세잔의 작품 등의 성과로, 회화의 근대성이 발생한다. 이러한 것들은 형과 공간의 문제를 조형이론에서 구도·구성의 원리를 찾아내어 조형공간을 화면에 재조직함으로써 자연을 실증하는 사고방식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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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서양의 대표적인 정물화를 보면서 조금 더 심층적으로 작가와 작품의 속에서 정물화를 이해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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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 - (1839~1906)

프랑스 남쪽 엑상프로방스에서 태어나 일생 대부분을 그곳에서 생활했습니다. 세잔은 프랑스의 화가 쿠르베를 존경했기 때문에 그의 초기작품에서는 쿠르베의 그림같은 거친 입체감과 어두운 색채를 엿볼 수 있어요. 그러다가 세잔은 1872년부터 약 2년 동안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피사로와 함께 작업하면서 풍경화에 관심을 갖고 이때부터 훨씬 더 절제되고 밝은 채색 법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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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광주리가 있는 정물>폴 세잔, 캔버스에 유채, 1890~1894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

폴 세잔이 그린 정물화를 자세히 보면 자연스럽다기보다 억지로 끼워 마춘 듯한 불편함이 느껴집니다. 가장 어색하게 보이는 곳은 뒤쪽에 있는 빵입니다. 여러 개의 빵을 자연스럽게 배치하지 않고 마치 탑처럼 쌓아 올린 데다, 앞쪽으로 쏟아질 것처럼 뒷부분까지 그려서 더욱 그렇습니다. 게다가 사과가 담긴 광주리 앞으로 기울어져 있고, 사과 밑에 깔려 있는 흰 천도 딱딱하게 각이 진 모양입니다. 이것은 폴 세잔만의 법칙인데 이 법칙은 바로 물체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힘을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세잔은 물체와 뭋에 사이에 어떤 힘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힘이 이루는 긴장감을 그려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대상을 똑같이 그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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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의 식탁> 폴 세잔, 캔버스에 유채, 1888~1890

이 그림 역시 무엇인가 좀 뒤죽박죽 엉망인 느낌이 든다. 바구니는 꼭 정면에서 보는 것처럼 앞모습만 보이는데, 항아리 하나는 위에서 내려다본 것처럼 그 입구가 환히 들여다보인다. 그런데도 이 우스꽝스러운 그림은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보는 관람자인 시선에선 뭔가 좀 잘못된 것 같다고 느끼지만, 그림 속 바구니나 항아리, 비뚤어 보이는 탁자는 “상관없어요. 위에서 보건, 밑에서 보건, 어떻게 보건 우린 그냥 우리예요”라고 낄낄거리는것 같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때로는 우리가 서서 내려다보아야만 그 참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반대로 때로는 낮은 자세에서 위를 올려다보아야만 제대로 볼 수 있는 것들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자신의 시선으로만 상대를 관찰한다. 어쩌면 세상은 모든 것을 일방적인 자신의 눈으로만 관찰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더 시끄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세잔의 그림이 자기 마음대로만 다른 사람을 쳐다보는 이들에게 사물을 좀 다르게 보라고,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전해 주는 많은 것들을 소중히 보듬고, 느껴 보라고 조용히 이야기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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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동양(한국)의 정물화를 살펴보도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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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 (1914~1965)

강원구 양구의 비교적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집안 살림이 갑자기 어렵게 되면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더 이상 그림 공부를 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당시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던 터라 그림 공부를 하려면 일본으로 건너가야 했습니다. 그는 일본에 갈 수 없었지만, 그림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혼자서 그림 공부를 했습니다. 박수근은 우리나라 현대 미술에 개성있고 독특한 화풍으로 유명한 화가입니다. 그의 그림 특징은 화강암 표면처럼 거칠거칠한 으깸 기법, 거리감을 배제한 평평한 화면 구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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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물> 박수근, 종이에 수채, 연도미상

목기에 칠을 한 듯한 쟁반에 오이와 감으로 보이는 과일이 각각 두 개씩 놓여 있습니다. 다른 배경이나 정물들 없이 간결하게 표현된 그림입니다. 하지만 초록색과 붉은색이 검은색 바탕과 대조를 이루어 선명하면서도 신선한 느낌을 준답니다. 이런 색 대비는 그의 그림 중에서도 보기 힘든, 조금은 독특한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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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의 정물화는 세잔의 정물보다 화려하고 풍성하게 표현된 그림은 아니지만, 소박하면서도 정겨운 느낌이 듭니다. 이것은 그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오이와 감, 굴비, 연필, 과일 같은 정물들을 주로 그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박수근의 그림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소박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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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플란트 정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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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 명화그림 - 뱀장어,레드뮬러 정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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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고흐 정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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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고흐 정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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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댕의 정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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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안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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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그림들2009. 11. 5. 15:35

폴 세잔, 폴세잔, 인상주의, 프랑스 인상주의, 인상파, 프랑스 인상파, 생트 빅투아르, 생트빅투아르산, 현대회화의 아버지, 화가

폴 세잔(1839~1906)은 프랑스 남쪽 엑상프로방스에서 태어나 일생 대부분을 그곳에서 생활했어요. 세잔은 프랑스의 화가 쿠르베를 존경했기 때문에 그의 초기 작품에서는 쿠르베의 그림 같은 거친 입체감과 어두운 색채를 엿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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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세잔은 1872년부터 약2년 동안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피사로와 함께 작업하면서 풍경화에 관심을 갖고, 이때부터는 훨씬 더 절제되고 밝은 채색 법으로 그림을 그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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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은 그리고자 하는 대상의 원래 색뿐만 아니라, 대상이 가장 강렬하게 나타나는 순간의 색을 얻고자 했어요. 아울러 사물의 형태와 구조를 강조했으며, 색으로 원근법을 표현하려 했답니다. 그의 화풍은 갈수록 원숙해지며 만년에는 그의 작품 중 가장 높이 평가받는 <생트 빅투아르 산>과 <수욕도(목욕하는 사람들)>연작 등을 그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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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은 야수파, 입체파, 추상 표현주의 등 현대 미술에 많은 영향을 미쳤어요. 그래서 흔히 세잔을 ‘현대 회화의 아버지’라고 해요.


<생트 빅투아르 산>을 건축물의 구성과 같이 표현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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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은 아버지의 반대로 그림 공부를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다른 화가들의 그림을 따라 그리면서 그림 연습을 했지요. 세잔은 특히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을 모사(다른 사람의 그림을 베껴 그리는 것)하면서 무엇보다 그림 안에서의 색채와 구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래서 한 가지 주제를 구성 방법과 색채를 바꾸어 가면서 여러 번 그렸답니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세잔을 인상주의 화가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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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인상주의 화풍의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어요. 인상을 묘사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지요.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인 모네가 빛의 변화에 따라 변하는 색을 보이는 대로 수정해 그림을 그렸다면, 세잔은 빛과 그림자의 변화에 따라 색 자체를 다르게 표현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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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편평한 화면에 입체감을 표현하려고 밝고 풍부한 색채를 사용했어요. 세잔은 또한, 그림 안에 새로운 힘을 넣고 싶어 앴어요. 그래서 자신이 마치 신이라도 된 것처럼 그림 안에 질서를 세우고, 단단한 구성을 통해 대상을 재창조하려고 했지요. 무슨 말인지 아리송하지요? 그의 대표적인 작품 <생트 빅투아르 산>을 보면서 설명하도록 할게요.

세잔은 그의 고향인 엑상프로방스 근처에 있는 ‘생트빅투아르 산’을 많이 그렸어요. “푸생처럼 자연에서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다.”라는 그의 말처럼, 세잔은 이 산을 주제로 60여 점이 넘는 그림을 그렸지요.

그림을 보면, 생트 빅투아르 산이 우뚝 솟아 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이렇게 산 전체의 모습을 그리려면 똑같이 높은 곳에서 바라봐야 하겠지요?

그래서 세잔은 날씨가 좋은 날이면 배낭 안에 그림 도구들을 챙겨서 반대편 산으로 올라갔답니다. 60여 점이 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세잔은 산을 셀 수도 없이 많이 올랐을 거예요. 산 위쪽 하늘은 작은 붓 터치들로 가득해요. 햇빛이 비치는 맑은 날에 그려서인지 노란색도 많이 사용했고요. 이렇게 빛에 따라 색을 달리 사용한 것은 인상주의에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아울러 산의 모습도 세부적인 묘사가 거의 없어요. 이 역시 인상주의 화풍이 느껴지는 부분이지요. 하지만 세잔은 인상주의 화가들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빛을 표현하지는 않았답니다. 한편, 산 아랫부분을 보면 마을이나 풀밭 같은 것을 그린 부분이 보일 거예요. 하지만 정확한 형태를 그린 것이 아니라서 무엇을 그렸는지는 알기 어려워요.

우리가 정확하게 관찰할 수 있는 것은 붓 터치들이 질서 정연하다는 점이랍니다. 수직과 수평의 면들을 마치 천을 짜듯 엮었지요. 이 부분만 따로 잘라서 본다면 산의 형태가 실제 모습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이처럼 세잔은 그림 안에 견고한 질서가 있기를 바랐어요. 건축물을 지을 때 뼈대가 되는 기본 구조가 중요한 것처럼 그림 안에 구조를 만들고 싶어 했지요. 세잔 이전의 사람들은 오직 신만이 이러한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답니다. 하지만 세잔은 자신이 신처럼 화면을 창조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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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안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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