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그림들2010. 2. 8. 15:43


“당신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고 큰 소리로 얘기하십시오.” 졸라는 마네에게 격앙된 어조로 편지를 썻다.

“당신은 경탄할만한 방법으로 위대한 작품을 창조하였으며 열정적으로, 그리고 혁신적인 기법으로 빛과 그늘의 진실, 사물과 피조물의 실체를 표현했습니다.”



소설가 에밀 졸라는 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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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아르 마네의 작품을 여러 차례, 공공연히 옹호하였으며, 당시 비평가와 대중들에게 혹평을 받았던 <올랭피아>와 <피리 부는 소년>에 찬사를 보냈다. 마네는 졸라가 보여준 우정과 이해에 대한 보답으로 이 유명한 작품을 제작했다.
졸라는 책상 앞에서 앉아 허공을 응시하고 있으며 그의 손에는 책이 한 권 펼쳐져 있다. 그가 문학가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은 무표정한 얼굴이나 정적인 포즈가 아니라 그를 둘러 싸고 있는 주변의 사물들이다. 화면 속에는 여러 책과 소책자들이 무심하게 흩어져 있고 에밀 졸라가 마네를 옹호하기 위해 쓴 팸플릿과 함께 벽에는 마네의 <올랭피아>가 걸려 있다.


<에밀 졸라의 초상> 1968년_에두아르 마네

마네의 명작 옆에는 일본판화 한 점과 벨라스케스 작품의 사본이 보인다. 이 세 작품들은 졸라가 자신의 글을 통해 피력했던 마네의 예술론에 대한 해석을 상징한다. 여러 가지 사실들을 종합해 볼때, 이 그림은 단순한 초상화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예술적인 교감을 나누었던 졸라에 대한 오마주인 동시에 그의 친구 졸라의 이상을 통해 표현한 마네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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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 안쪽 옆에 있는 줄무늬가 인물의 편화 현상을 가져온다. 피리부는 소년은 검은 색 윤곽으로 둘러싸여 배경에서 따로 떨어져 나온 듯하다. 단순한 구성과 이차원적인 화면으로 인해 그림은 마치 트럼프 카드 혹은 에피날 이미지(19세기 성행했던 채색판화)같아 보인다.

<올랭피아>가 야기한 스캔들로 인해, 1886년 살롱의 심사인단은 <피리 부는 소년>을 낙선시키기로 결정했다. <피리 부는 소년>은 마네가 스페인 여행에서 돌아온 후 벨라스케스와 고야의 작품을 모델로 하여 제작한 것으로 마네의 작품 중에도 걸작으로 손꼽힌다.






<피리 부는 소년>
1866년_에두아르 마네


작품의 모델은 마네의 친구인 르조슨 사령관이 그에게 데려온 황제친위대의 피리 부는 소년이다. 모델이 나이가 어린 소년이고 화면구성이 매우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마네는 커다란 크기의 화폭에 마치 공식 초상화를 그리듯이 주제를 표현해냈다. 사실적으로 생생하게 묘사된 소년은 화면 중앙에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으며, 색채의 표현 역시 단순화되어, 모자 위의 노란색을 제외하고는 전적으로 붉은색,검은색, 그리고 흰색의 대비 효과에 의존한다. 종종 트럼프 카드와 비교되곤 하는 이차원적 이미지에 깊이감을 부여하는 것은 소년의 발 아래에 생기는 그림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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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밀리언의 사형 집행> 에두아르 마네

위대한 스페인의 회화 전통 이외에 이미지의 편화에 영향을 준 중요한 요인으로 지적되는 것은 바로 일본미술이다. 일본판화의 선형적 도안은 당대의 화가들에게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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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 위의 점심> 1863년 에두아르 마네

1863년 살롱의 심사는 대단히 엄격했다. 출품된 작품의 3/4이 거절당했고, 황제 나폴레옹 3세는 이 작품들에 대해 따로 ‘낙선전’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낙선전에 전시된 작품들 중에는 제임스 맥닐 휘슬러, 앙리 팡탱 라투르, 그리고 에두아르 마네의 작품들이 속해 있었고, 엄청난 스캔들을 불러일으킨 이 <풀밭 위의 점심식사> 역시 이 작품들 가운데 하나였다. 티치아노의 <전원음악회>와 라파엘로의 <파리스의 심판>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제작된 <풀밭 위의 점심식사>에는 화면 뒤쪽의 여인을 제외하고 두 명의 남성과(이들 중 한명이 마네의 동생 외젠이다.) 그가 아끼던 모델 빅토린 뫼랑이 등장한다.

마네의 작품이 갖고 있는 탁월함과 진보적 성격을 알아볼 수 없었던 비평가와 대중들은 작품이 불경스럽고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화면 속 두남자가 입은 옷은 당시 유행하던 스타일이었지만, 당시 분위기는 도저히 이 작품을 용납할 수 없었다. 마네는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제작하는 동안 이 작품이 이토록 커다란 스캔들에 휩싸이리라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16세기 거장들의 작품을 모티브로하여, 고전과 근대가 공존하는 작품을 창조하려 했을 뿐이었다.

화면 속 인물들의 포즈는 라파엘로의 <파리스의 심판>을 묘사하여 제작한 마르킨토니오 라이몬디의 판화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나 마네가 진정한 모델로 생각했던 것은 16세기 베네치아 거장들의 작품, 그중에서도 특히 티치아노의 <전원음악회>였다.

마네는 부지런히 루브르를 드나들며 오래된 거장들의 작품에 대해 연구했다.

여인은 관객을 바라보며, 마치 관객들에게 도전하는 듯 보인다. 흔들림 없는 그녀의 시선에서 나체로 있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은 찾아 봇 수 없다. 이와 같은 여인의 모습은 작품을 둘러싸고 일어난 스캔들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고대의 언어를 근대의 문법으로 풀어낸 마네의 능력과, 이 작품의 탁월함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에두아르 마네는 정물의 ‘회화의 시금석’, 즉 훌륭한 화가가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 가야 할 시험대라고 생각했다. 빅토린의 옷 위에서 쏟아져 불밭 위로 흩어진 식사의 흔적들, 즉 빵과 과일바구니, 물병에 대한 세부묘사는 정물화 장르에 대한 마네의 특별한 재능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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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랭피아> 1963년_에두아르 마네

<풀밭 위의 점심 식사>가 커다란 스캔들을 불러일으킨 후, 1865년 마네는 또 다시 이 강렬한 인상의 유화를 살롱에 출품했다. 마네의 <올랭피아>는 티치아노가 그린 비너스를 본 뜬 것으로, 마네가 이 작품을 <병사들에게 능욕당한 그리스도>와 함께 살롱에 출품한 것이, 비너스의 그림을 <가시면류관을 쓴 그리스도>와 께 칼 5세에게 바친 베네치아 화파의 거장 티치아노를 염두에 둔 것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당시 아카데미 취향의 누드화에 대한 마네의 반발이 드러난다. 이번에도 마네의 모델이 된 것은 빅토린 뫼랑이었다. 모델의 뚜렷한 개성, 편안한 포즈, 뻔뻔하고 오만한 시선, 전혀 이상화되지 않은 나체의 적나라함, 당시 유행하던 장신구는 보는 이로 하여금 작품 속이 상황이 마치 당대의 일인 것 처럼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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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올랭피아’는 창녀들이 가장 흔히 사용하던 예명이었으며, 게다가 여인의 발치에 있는 검은 고양이의 모습은 <올랭피아>를 대중과 비평가들에게 용서받지 못할 작품으로 만들어 버렸다. 마네의 친구이자 지지자였던 에밀 졸라는 작품 <올랭피아>는 마네가 가진 화가로서의 재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밝은 색조와 어두운 색조를 적절히 배치하는 능력, 어두운 색조의 미묘한 뉘앙스를 자유자재로 표현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그의 세련된 색채 구사는 배경의 색채 배합에서 정점에 이른다. 그림의 주인공에게 꽃다발을 건네는 흑인 여성이 검은색 배경으로부터 따로 떨어져 나온 듯 보이는 것은 이 같은 섬세한 색조의 차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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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도의 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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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안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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