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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16 프란시스코 고야 꿈과 현실의 관능미
주제별 그림들2009. 12. 16. 15:04

프란시스코 고야 Francisco Goya (1746.3.30 ~ 1828.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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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화가로 사라고사 주의 마을에서 금세공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마드리드의 미술학교를 거쳐 청운의 꿈을 품고 로마에서 유학했다. 1799년 스페인 왕궁화가로 발탁되었고 [나체의 마하]와 [옷을 입은 마하]와 같은 걸작을 그렸다. 말년엔 귀머거리가 되어 고생했으며, 이 시기에 그려진 흑색의 어두운 그림들은 어두운 상상력, 귀기를 보는 듯한 실감으로 인간 존재에 대한 비참한 시선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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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의 생애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전해 오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는 스페인 사라고사 지방의 시골 마을 푸엔데토도스의 가난한 도금공의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어느 날 어머니의 부탁으로 양을 돌보면서 석탄 부스러기로 땅에 그림을 그리며 놀고 있었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수도승이 그 그림에 반해서 부모에게 이야기하여 그를 사라고사의 호세 루산의 아틀리에에 넣어 주었다는 에피소드 같은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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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빼놓지 않고 본다는 고야의 두 걸작 <벌거벗은 마하>와 <옷을 입은 마하>에 대해서도 전설이 빠질 수 없다. 사실 오랫동안 이 두 작품의 모델은 고야의 애인이었던 알바 공작부인이라고 전해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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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는 자기 애인의 누부시게 빛나는 벗은 몸을 캔버스에 남기려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하던 알바 공작이 갑자기 아틀리에에 들이닥칠 때를 대비하여 옷을 입은 작품을 준비해 두었다. 즉 실제로는 나체를 그리면서 컽으로는 옷 입은 초상을 그리는 척했기 때문에 결국 두 점의 작품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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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에 카를로스 4세가 왕위에 오르고부터 고야는 왕실 소속 화가가 되어 국왕 일가의 초상을 종종 그렸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1800년 여름 아람페스 궁전에서 그린 <카를로스 4세 부부와 가족>인데, 그것을 보면 한 사람 한사람 인물의 특색을 단지 표면적인 것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특징까지 남김없이 파헤치는 무서울 정도로 차가운 고야의 붓끝을 알 수 있다. 보통 궁정에 속한 화가가 왕가의 초상을 그릴 때는 가능한 한 무난하게 아름답고 화려하게 그리기 마련인데, 고야가 그린 이 그림은 그려진 사람들이 불평을 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될 만큼 철저하게 생생한 진실을 추구하고 있다. 특히 화면 중앙의 왕비 마리아 루이사는 의상만 화려하고 눈부실 뿐 얼굴은 늙어서 쭈그러진 모습이 속속들이 드러난 무참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런데도 국왕은 이 초상화에 매우 만족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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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는 나체화, 특히 여성의 나체화는 거의 그려진 적이 없었다. 카톨릭의 가르침이 매우 강했다는 점도 한 이유일 것이다. 스페인은 오늘날에도 소매없는 옷을 입거나 모자를 쓰지 않고는 교회에 들어갈 수 없는 나라다. 같은 라틴계라 해도 스페인 미술사에는 이탈리아와 비교하여 현저하게 나부상이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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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마하>는 목과 몸통이 조금 이상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종종 지적되어 왔는데, 그것만이 아니라 몸 전체의 비례도 결코 이상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이 나부상의 생생한 매력은 바로 거기에서 오는 것이다. 19세기의 절반을 지난 후에도 마네의 <올랭피아>가 인간의 나부를 그렸다고 비난받은 것을 생각해 보면, 고야의 이 나부상은 아주 대담한 시도였다고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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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 그림 더 보기>


고야의 긴 생애는 렘브란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밝음과 어둠의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의 밝고 활동적이고 놀기 좋아하던 방탕자가 후반의 음울하고 잔혹하기까지 한 엄격한 인생의 관찰자로 변모한 이유에 관해서는 중년 이후 알바 공작부인과의 사랑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이야기되어 왔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결정적이었던 것은 40대 중반 이후 그를 덮친 병이다. 젊은 시절의 방탕함의 대가였던지, 고야는 1792년 무렵부터 조금씩 청력을 잃어 마침내 완전히 귀가 먹게 되었다. 오로지 외면적인 것에만 향해 있었던 고야의 눈이 인간의 마음의 내부로 향하게된 것은 그때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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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의 고야를 특정짓는 것은 무엇보다도 인간성의 진실에 대한 추구다. 궁정의 초상화가로서도 이미 그는 모델이 된 인물의 본성을 잔혹할 만큼 파헤치지 않고는 배기지 못했는데, 화려한 사교 생활에서 물러나 어두운 귀머거리의 집에 틀어박히고 나서 그는 더욱더 예민한 관찰자가 되었다.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환상성이라는 것도 결코 황당무계한 것이 아니라 무서울 만큼의 진실인 것이다. <옷을입은마하>와 <벌거벗은마하>를 그린 고야의 눈도 아름다운 것을 동경하는 서정시인의 눈이 아니라 피하기 어려운 인간의 운명을 응시하는 예언자의 눈이다. 그리고 바로 그 가차없는 눈 때문에 그는 근대 선구자의 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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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안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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