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2009. 11. 24. 17:26

피카소 그림 속 여인들과 그의 삶을 보면서 거장 피카소가 남긴 작품세계를 이해해보자.

파블로 피카소(1881~1973)스페인 말라가 출생의 화가. 입체파의 창시자이며, 사실주의에서 초현실주의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양식의 그림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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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작품들은 기법과 주제가 다양하게 변화하였고 그 주제의 중심은 전쟁과 사랑·빈곤과 절망·노여움과 기쁨·사랑과 성(性) 등이다. 1901~1905년 까지의 청색시대,1905~1906년의 장미빛 시대 등을 거치며 회화뿐 아니라 조각·석판화·도자기·소묘·무대장치·벽화·태피스트리 등도 제작하였으며 미술사상 제작량이 가장 방대한 화가 중의 한 사람이다.


피카소는 여자들과 평균적으로 10년을 주기로 동거를 했다고한다. 정식 결혼은 생에 두 번만 했다. 많은 여인들 중 7명이 피카소의 작품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중요한 인물들이다.

피카소의 첫 여인은 페르낭드 올리비에 (1881 -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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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가 처음 사랑한 여자는 유부녀였다. 올리비에는 피카소의 모델이었고, 둘은 사랑에 빠지고 만다. 피카소와 동갑내기로 1904년(23세)에 만났다.

빈민들의 절박한 생활을 표현하던 “청색 시대”에 올리비에를 만난 피카소는 그녀의 도움으로 침울한 청색을 벗고 “장미색 시대”로 변화할 수 있었다고한다.

그 대표가 “아비뇽의 처녀들”로 이 작품으로 피카소는 큐비즘을 개척했다고한다.그러나, 이 시기에 피카소는 올리비에와 헤어졌고 올리비에는 피카소와의 모든 것을 청산해야 했다.


다음으로 만난 여인이 에바 구엘 (1885 -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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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인은 큐비즘으로 들어설 때 인도자 역할을 맡았다. 유독 몸이 쇠약했던 에바는 1차세계대전 다음 해인 1915년 어린 나이에 결핵으로 죽는다. 피카소는 그녀의 죽음을 슬퍼했지만 주변 사람들은 오히려 피카소를 비난했다. 그 이유는 그녀가 병을 걸려을 때 피카소는 자신에게 전염될까봐 혼자 이사를 가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만난 여인은 러시아 발레단의 일원인 올가 코글로바 (1891 -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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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미술을 맡은 피카소는 36살에 25살의 발레리나 올가와 첫번째 결혼을 한다.
그녀는 피카소의 첫 아들 파울로를 낳았으나 버림을 받는다.



피카소는 곧 바로 열일곱 살 난 처녀 마리 테레즈 발터 (1909 - 1977)에게 눈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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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무려 6개월 동안이나 따라다닌 끝에 작업실로 데려와 초현실주의 때의 걸작“거울 앞에 선 처녀”의 모델로 세울 수 있었다고한다. 피카소에게 가장 창조적인 영감을 준 여성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녀가 스물두 살 때 딸 마리아를 낳자마자 피카소는 몰래 앙리에트 마르코비치를 만나고 다녔다. 생애 최대의 걸작 <게르니카>는 앙리에트와 살 무렵에 그린 것이다.


다섯번째 도라 마르 (1907 -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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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미가 돋보이는 여성으로 대표작 “게르니카”를 그리는데 도움이 되었다고한다. 2차 대전이 끝날 때즘 피카소는 40살이나 연하인 법대 출신의 지적인 처녀 프랑수아즈 질로 (1921 - )를 만나게 된다. 피카소가 62세 때 그녀 나이는 22세였다. 안의 반대를 받았고, 결국 집을 나와 피카소의 작업실에 살림을 차렸다고한다.


피카소는 이 때 자신의 아이들을 작품의소재로 해 생동감 넘치는 초상화들을 남겼다. 이 무렵 피카소는 공산당에 가입했다. 극적인 사실을 취재하기 이해 열 일곱 살 난 여기자 주느비에브가 찾아왔고 그녀는 취재가 끝난 뒤에도 자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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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피카소의 애정 행각을 알게 된 프랑수아즈는 피카소의 여자로서는 최초로 먼저 그와 어지기로 결심한다. 항상 자신이 여자 관계를 결정짓던 피카소로서는 이러한 사실이 몹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한다. 그녀는 자신이 낳은 아들 딸을 법정투쟁을 통해 피카소의 호적에 입적시키는 데 성공하고, 그녀의 자식들은 훗날 어마어마한 피카소의 재산을 물려받게 됐다.

그녀가 떠난 뒤에도 피카소는 더욱 수많은 여인들을 만났다고한다. 이미 70살이 넘은 피카소였지만 젊은 여인에 대한 열망은 그칠 줄 몰랐다.


피카소의 마지막 연인이 된 자클린 로크 (1927 -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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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는 피카소가 최고의 명성을 누렸던 시기로 그녀는 피카소가 말년에 오직 작품에만 전념하도록 도와 줬다고 한다. 그녀는 피카소에게 언제나 나의 주인님이라 부르며 헌신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바쳤다.


20세기 현대 미술의 거장 피카소는 1973년에 생을 마감한다.

<세계명화 감상하러 가기>
Posted by 이안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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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 정보 담아가요

    2009.12.11 16:47 [ ADDR : EDIT/ DEL : REPLY ]

ETC2009. 11. 17. 14:33
현대미술의리더 "파블로 피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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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태생이며 프랑스에서 활동한 입체파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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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미술에 영향을 받아 파리로 이주하였으며 르누아르, 툴루즈, 뭉크, 고갱, 고흐 등 거장들의 영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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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청색시대를 거쳐 입체주의 미술양식을 창조하였고 20세기 최고의 거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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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카소 - 게르니카 ]

1881년 10월 25일 에스파냐 말라가에서 출생하였으며 그의 아버지는 미술교사였다. 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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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카소 - 모자를 쓴 소년의 모습 ]

초급학교에서는 읽기와 쓰기를 어려워했고 졸업이 어려울 정도로 학습능력이 저조했지만 그림을 그리는 능력은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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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카소 - 의자에 않은 여인 ]

14세 때 바르셀로나로 이주하였는데, 이때부터 미술학교에 입학하여 미술공부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출석을 거의 하지 않았고 학교 규칙과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학교를 그만두었다. 다시 마드리드에 있는 왕립미술학교에 다녔지만 결과는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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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카소 - 거울 앞의 소녀 ] 

17세 때 다시 바르셀로나로 돌아왔으며 이 무렵부터 프랑스와 북유럽의 미술운동에서 많은 자극을 받고 특히 A.르누아르, H.툴루즈 로트레크, E.뭉크 등의 화법에 매료되어 이를 습득하려고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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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카소 - 기타 ]

1900년 그가 19세 때 처음으로 파리를 방문하였고, 다음 해 재차 방문하여 몽마르트르를 중심으로 자유로운 제작활동을 하고 있던 젊은 보헤미안의 무리에 합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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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카소 - 꿈 ]

피카소는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등 인상파들의 작품을 접했으며 고갱의 원시주의고흐의 열정적 표현주의 등의 영향도 받았다. 당시 피카소는 프랑스어를 구사할 줄 몰랐고 세계적인 도시 파리의 모습에 혼란을 겪고 있었다. 화려함의 이면에 가려진 빈곤과 비참함을 목격하였으며 질병과 성병이 가득한 도시의 가난을 두려워하였다. 
피카소는 자살을 결심하기도 하였으며 파리의 구석진 다락방에서 추위와 가난을 인내하며 지냈다. 하지만 당시의 요절한 화가들에 비하면 피카소는 단기간에 명성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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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카소 - 남자와 여자 ]

20세에 첫 전시회를 열었고 그의 상황은 나아지기 시작하였다. 피카소는 파리의 비참한 생활상에 주목하여 거지와 가난한 가족 등을 그렸다. 청색이 주조를 이루는 그림을 그렸는데 이때를 피카소의 ‘청색시대()’라고 부른다. 이때 제작된 작품들은 하층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의 생활 참상과 고독감이 두드러졌다. 또한 파리에서 동고동락하면서 지낸 절친한 친구였던 카를로스 카사헤마스가 비극적인 자살을 함으로써 그의 충격은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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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 담배피는 사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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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 담배피는 사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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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 담배피는 사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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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 담배피는 사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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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 담배피는 사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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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 담배피는 사람 6]


1903년에 제작된 《인생》은 당시 피카소의 혼란스러웠던 감정을 잘 표현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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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카소 - 아비뇽의 처녀들 ]

1904년 몽마르트르에 정주하면서부터는 연애를 하였고 그림의 색조가 청색에서 장밋빛 시대로 바뀌면서 색상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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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카소 - 앉아 있는 여인]

과거의 에스파냐예술, 카탈루냐지방의 중세조각, E.그레코, L.F.J.고야 등이 지닌 독특한 단순화와 엄격성이 가미되어 갔다.

[ 피카소 - 앉아 있는 여인의 흉상]

 테마는 작품 《공 위에서 묘기를 부리는 소녀》 《광대》 《곡예사가족》 등에서처럼 곡예사들을 묘사하는 일이 많아졌는데, 어릿광대나 곡예사는 무대 위의 모습이 아니고 그 생활의 이면을 파헤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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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카소 - 여인의 얼굴 ] 

1905년 피카소는 파리에서 인정받는 화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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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카소 - 여자의 얼굴 ]

기욤 아폴리네르를 만났고 다음 해에는 H.마티스와 교유하였다. 그러나 작풍은 P.세잔의 형태관을 살려나가 점점 단순화되고, 1907년의 그의 대표작인《아비뇽의 처녀들》에 이르러서는 아프리카 흑인 조각의 영향이 많이 나타나는 동시에 형태분석()이 비로소 구체화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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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카소 - 우물가의 세여인 ]


조르쥬 브라크와 알게 된 것도 이 무렵으로, 그와 함께 공동작업으로 입체주의 미술 양식을 창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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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카소 - 테이블 위의 부엉이 ] 


1909년에는 분석적 입체파, 1912년부터는 종합적 입체파시대에 들어갔다. 이 무렵 그는 이미 20세기 회화의 최대 거장이 되었고, 종합적 입체파수법을 1923년경까지 계속하면서 여러 가지 수법을 차례대로 전개하였는데, 활동범위도 J.콕토와 알게 되면서 무대장치를 담당하는 등 점점 확대되어 갔다. 1915년 《볼라르상()》과 같은 사실적인 초상을 그리고, 1920년부터는 《세 악사》 등 신고전주의를, 다시 1925년에는 제1회 쉬르레알리슴전()에 참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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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카소 - 파이프를 문 남자 ]


또 1934년에는 에스파냐를 여행하여 투우를 소재로 그렸으며 1936년의 에스파냐내란 때는 인민전선을 지지하고, 다음 해 프랑코장군에 대한 적의와 증오를 시와 판화로 나타낸 연작 《프랑코의 꿈과 허언()》 및 전쟁의 비극과 잔학상을 초인적인 예리한 시각과 독자적 스타일로 그려낸 세기의 대벽화 《게르니카》를 완성하였다. 
그리고 《통곡하는 여인》도 이 무렵의 작품이며 이때부터 피카소 특유의 표현주의로 불리는 괴기한 표현법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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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카소 - portrait of marie ]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해는 에스파냐에서 지냈으나 다음 해 독일군의 파리 침입 직후 파리로 돌아와 레지스탕스 지하운동 투사들과 교유하고, 1944년 종전 후는 프랑스공산당에 입당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부터 주로 남프랑스의 바닷가에서 생활하면서 그리스신화 등에서 모티프를 취하여 밝고 목가적 분위기마저 자아내는 독특한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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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카소 - 회색빛 꽃 여인 ]

한편 도기() 제작과 조각에도 정열을 쏟고 석판화의 제작도 많아 이 영역에서도 새로운 수법을 창조하였다. 그 후 6·25전쟁을 주제로 한 《한국에서의 학살》(1951), 《전쟁과 평화》(1952) 등의 대작을 제작하여, 현대미술의 리더로서 거장다운 활약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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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카소 - portrait of dora ma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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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카소 - portrait of maya with her do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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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카소 - Portrait of Olga in the Armchai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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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카소 - still life with bull's hea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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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카소 - two bathe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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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카소 - Women Running on the beach ]




그 밖의 피카소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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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안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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